[서울대 권장도서 100권]<17>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04분


‘군주론’이라는 작은 책자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충격적 주장을 제기한다. 필요한 경우 정치가들은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때로는 위선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그의 이름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평가가 나온 데에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만 매달린다면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공헌을 정당하게 볼 수 없으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들이 필요에 따라 일체의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조한 이면에는 당시 유럽의 지배적인 정치사회철학이던 기독교와 인문주의적 공화제 사상과 같은 ‘지적 전통’을 전복하겠다는 그의 야심 찬 지적 작업이 깔려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당시의 지적 전통 위에 수립된 정치이론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라기보다는 ‘있어야 할’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문제만을 다뤄 항상 사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치학의 핵심은 ‘권력의 조직체를 어떻게 획득하고 유지할 것인가’였던 것이다.

당시까지 모든 정치이론의 중심이었던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의 구성과 조직의 문제’는 그에 의해 ‘효과적인 권력 조직의 획득과 유지의 방안에 관한 문제’로 바뀌게 된다. 이 권력 조직을 그는 ‘스타토(stato·국가)’로 정의하였는데 이는 그의 정치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권력 조직으로서의 국가의 문제가 마키아벨리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정치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치이론에서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릴 만한 큰 사건이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이 대결을 통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정치 조직으로서의 근대적 영토국가가 출현했던 당시에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도시국가 피렌체의 관리이던 마키아벨리는 군사 외교 업무를 접하게 된다. 이때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사 대결장으로서 유린되던 이탈리아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조직을 통해 이들과 같은 영토국가의 조직을 확보하고 또 뛰어난 군사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에게는 공동체 안전을 위한 결정적 수단인 힘, 즉 권력과 능력의 문제는 정치학의 중심 문제였다. 그가 ‘비르투(virt`u)’라고 표현한 이 힘이 하나의 그릇에 담겼을 때, 또 하나의 조직체가 되었을 때 국가가 된다고 정의했다.

마키아벨리의 공헌은 당대에 출현하기 시작한 근대적 정치질서의 역사적 의의를 그 누구보다도 빨리 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한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근대 정치이론의 비조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군주론’을 이해할 때 그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기존의 도덕률에 대한 거부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사(修辭)적 필요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상섭 서울대 교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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