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하는 ‘논어’가 공자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자가 성인이고 논어가 불멸의 고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었다. 20년 전에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요즘도 그런지 필자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떤 때는 학생들에게 ‘논어’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리타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름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때 참된 농군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듯이 논어가 지닌 그 고리타분한 냄새에서 옛 선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때에야 우리 속에 스며있는 전통의 향기를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겠다.
논어는 2000년 이상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고전 중의 고전이었다. 동아시아의 모든 지식인은, 심지어 불교 승려들까지도, 논어를 반드시 읽어야 했다. 특히 유학자들은 논어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공자 말씀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갔다.
논어는 조선의 유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재해석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논어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논어는 그 자체로도 읽고 음미해 볼 만한 책이지만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논어의 해석이라는 모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논어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역사적 이유 외에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논어는 소위 ‘수레 축 시대’라고 불리는 2500여 년 전의 책이다. 다른 고전도 마찬가지지만 논어에는 문명이 열리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논어는 간결한 대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너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쉽다. 그렇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공자의 짧고 함축적인 대답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읽고 나서 한참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아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감탄하게 하는 책, 이런 책이 정말 고전이라 할 만한데 논어가 그중의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논어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소위 성인 혹은 현인이라고 칭해지는 공자와 제자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양념 같은 부분 때문에 공자를 성인으로 모신 후대의 유학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논어에 실린 공자 말씀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더불어 성인도 약점이 있음을 알게 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논어는 대화록이므로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한문 실력도 늘릴 겸 원문과 대조해서 읽으면 더 좋겠다. 한문으로는 못 읽더라도 주석을 참조하면서 꼼꼼히 읽으면 우리 조상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주희(주자·朱子)의 사상도 아울러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자꾸 읽다가 보면 공자가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며 이래서 ‘공자 말씀’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허남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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