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25>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입력 2005년 4월 29일 17시 57분


올해는 ‘물리의 해’로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 등 주요 물리 업적을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물리학에서는 또 다른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는데 아주 작은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태동은 그 과정 자체가 극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 무대의 중심에 섰던 하이젠베르크가 새로운 과학의 발전에 참여한 자신의 경험을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풀어 쓴 자전적 글이 ‘부분과 전체’이다.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열아홉 살 때 친구들과 도보여행에서 나누었던 대화에서 시작하여 그의 과학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많은 인물들과의 교류를 20편에 걸친 대화로 구성하고 있다. 창조적인 과학개념의 형성 과정에 따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사색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보어와 아인슈타인 등 동시대를 살았던 과학자들의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치열한 토론들은 현대물리학 형성의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진정한 과학탐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는가를 이 책은 보여 준다. 하이젠베르크가 그리고 있는 것은 복잡한 이론이나 공식과 씨름하는 물리학자가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인간 그 자체이다. 숲 속으로의 도보여행이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일화들은 각박하고 여유 없는 도시적 환경에서 의미 없는 만남만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는 한없이 부럽기만 한 광경이기도 하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세세한 부분까지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전체가 가지는 총체적인 연관성과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은 그의 학문과 삶의 전반에 대한 태도에 잘 나타나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가 단순한 과학이론에 그치지 않고 기계론적인 자연관을 대체할 새로운 인식의 출발을 가져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어서 청년운동에 참가하는 등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부터도 자신을 멀리하지 않았으며 전쟁의 소용돌이와 그 부산물인 핵개발과 관련하여 ‘연구자의 책임’에 대해 우려하고 고뇌하게 된다. 미국으로 옮겨간 이탈리아 과학자인 페르미와의 토론에서 망명을 권유하는 페르미를 뿌리치고 독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번민하는 과학자를 발견하게 된다.

양자역학의 수학적 법칙을 발견했을 때 “모든 원자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미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준 수학적 구조의 풍요함을 추적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외치던 그의 환호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요즘처럼 모든 분야에서 세분화와 전문화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자가 철학 역사 종교 언어 윤리 등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핵개발과 폐기물, 환경문제, 그리고 생명윤리 논란 등 과학기술의 사회적 의미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비치는 이때 하이젠베르크의 메시지는 참된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석민 서울대 교수·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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