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경남 교육청

  • 입력 2005년 4월 30일 0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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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교육청이 교내 자살사건을 축소 은폐하라는 실무지침서를 발간한 사실은 우리 교육이 어디까지 황폐해지고 타락할 수 있는지를 참담하게 드러낸다. 교육청이 어떤 기관인가. 초중등학교와 교사를 지도 감독하는 ‘교육자 중의 교육자’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교육자가 아니라도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거짓을 꾸미도록 지시했다니 어떤 변명과 사과로도 용납될 수 없다.

‘학생 생활지도 길라잡이’라는 제목으로 도교육청이 2002년 작성 배포한 자료집은 교사들을 파렴치한 사기극에 동참하도록 했다.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교내에서 음독자살한 사건’을 상정하고 교직원을 병원관련팀, 기밀유지팀, 언론·사법기관 통제팀 등으로 나눠 조직적 공모(共謀)로 이끌었다.

이 ‘길라잡이’를 만든 이유는 언론·사법기관 통제팀의 역할을 보면 알 수 있다. ‘보도와 수사로 인한 학교 측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의 죽음까지도 축소 조작 은폐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해도 사건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곳이 교육청인데 되레 학교 측 피해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도교육청의 교육철학과 자질이 의심스럽다. 이러고도 당신들이 교육자인가.

3년 전에 만들어진 이 자료가 이제야 공개된 점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지침을 받고도 학교와 교사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묻고 싶다.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면 도교육청 ‘지침’이 그만큼 무의미하다는 뜻이거나, 학교와 교사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느 쪽이어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교육청은 이 자료집이 실제 학교현장에서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철저한 책임 규명과 문책이 있어야 한다.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교육자들에게 교육받는 이 땅의 학생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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