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는 1946년 3월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을 배경적, 원인적 사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 토지개혁이 작게는 비석골 양지터의 한 젊은 지주의 집안에, 크게는 마을 전체에 가져다 준 엄청난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젊은 지주와 늙은 마름 사이의 생사를 건 갈등과 대립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1953년에 1946년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카인의 후예’는 기본적으로 당대소설이 되겠다. 하지만 그 중간에 6·25전쟁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역사소설적인 발상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연재본과 최근 나온 전집본(황순원전집·문학과지성사판)을 비교해 보면 작게는 문장부호에서 크게는 단락에 이르기까지 수정 작업을 해 구체성, 정확성, 개연성, 과감성 등을 좀 더 분명하게 한 것으로 드러난다. 연재본을 계속 고치고 빼고 덧붙임으로써 인물의 감정과 심리가 좀 더 명료한 색깔을 입을 수 있었고, 플롯이 좀 더 튼튼한 인과성 위에 얹힐 수 있게 되었으며, 또 표현상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전집본은 연재본보다 안타고니스트(적대적 인물)인 도섭 영감의 부정적인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박훈을 향한 오작녀의 사랑과 보호본능을 더욱 적극적으로 그려냈다.
20여 년 동안 마름으로 살며 지주에게 충성을 다한 것이 당에 의해 과오로 포착되면서 도섭 영감은 살기 위해 지주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당을 위해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도섭 영감을 무자비한 행동대원으로 내몰아 버린 힘은 지주에 대한 불만보다는 공산당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에서 찾아야 한다. 토지개혁이라는 극한상황에 직면하면서 젊은 지주 박훈과 늙은 마름 도섭 영감이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로 치닫는 과정과 박훈이 여성성을 모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오작녀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이 중첩되면서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소설이나 역사소설로부터 빠져 나오게 된다. 전자의 과정이 어둠, 죽음, 지상 등의 이미지를 매개하고 있다면 후자의 과정은 밝음, 생명, 천상 등을 매개하고 있다.
작품 내내 견인주의(堅忍主義·욕정이나 욕망 따위를 의지의 힘으로 굳게 참고 견디어 억제하려는 도덕적 종교적 태도), 소극성, 나약함 등으로 묘사되던 박훈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 가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섭을 칼로 찌르는 용기를 내보인 것은 반전의 묘를 살려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섭 영감에게 당의 숙청과 젊은 지주 박훈의 복수극은 거의 동시에 펼쳐진다. “내가 대신해서 도섭 영감의 일을 처리한다. 어서 이곳을 떠나라. 이 이상 더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박훈이 혁이에게 보낸 쪽지의 내용으로 끝나고 있는 이 소설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카인의 후예의 정본은 연재본을 적극적으로 개작한 끝에 완성도를 높인 전집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조남현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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