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1>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

  • 입력 2005년 5월 8일 17시 59분


러시아 문학사의 큰 봉우리이고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한 작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러시아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거장이다. 생전에 이미 성자(聖者)로서 추앙받았던 그는 한국 근대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흔히 ‘전쟁과 평화’와 함께 소설가 톨스토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1877년)는 구성과 세부 묘사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런 만큼 널리 읽히는 작품이고 러시아와 구미(歐美)에서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의 러시아를 다룬 ‘전쟁과 평화’가 전쟁과 평화, 가족사와 역사의 문제를 이전 세대의 모습을 통해서 통일적으로 보여주는 과거로의 회귀 소설이라면,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의 러시아, 즉 톨스토이가 자신의 시대로 돌아온 이른바 동시대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농노 해방(1861년) 이후 빚어진 새로운 사회상황, 즉 결혼과 가족의 문제를 포함한 당대의 여러 사회적 문제와 풍속을 무려 150여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기본적인 구성은 안나와 브론스키, 그리고 레빈과 키치라는 두 쌍의 남녀 이야기로 돼 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안나는 상류사회의 매우 정숙한 귀부인으로 등장하지만, 청년장교 브론스키를 만나면서 불륜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당시 상류사회의 전반적인 관행과는 달리 자신의 불륜을 숨기지 못하며, 그녀 내면의 본능적 삶의 열정에 대한 요구와 그녀가 속해 있는 사회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올바른 것은 아니더라도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더욱 매달리면서 소위 ‘사회적 자아’를 포기한다. 그러나 그녀는 브론스키마저 자신을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길을 선택한다.

반면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레빈은 안나와는 정반대의 과정을 겪는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그는 지인들로부터 소위 ‘국외자’로 인정되는 처지에 있지만, 점차 소설이 진행되면서 가족과 사회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간다.

안나와 마찬가지로 레빈 역시 자신의 개인적 이상과 완고한 사회적 현실 사이의 장벽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안나와 달리 중도적인 길을 선택하면서 파국을 피해간다. 그 길이란 삶의 의미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었고, 그로써 그는 안나와는 달리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두 주인공이 폐쇄되고 경직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개인의 개성과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 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은 그 완결적인 형식미에도 불구하고 ‘열려 있는’ 작품으로 남는다.

사실 그러한 ‘열려 있음’은 모든 고전의 자격조건인데, 이 작품 이후에 정작 톨스토이 자신이 그러한 ‘열려 있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학을 포기하게 되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박종소 서울대 교수·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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