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9>마담 보바리-귀스타브 플로베르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04분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1857)는 불륜에 빠진 한 여인의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주의 문학의 완성, 자연주의 소설의 시작, 현대 소설의 선구 등 이 소설이 누리는 화려한 평가와 명성에 비해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바로 이 보잘것없는 소재로부터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의 ‘마담 보바리’를 만들어 냈다는 데 플로베르의 천재성과 예술성이 있다.

주인공 에마 보바리는 소녀 시절 무분별하게 읽은 낭만적 경향의 소설로 인해 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간주한 나머지 자신의 삶도 소설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고 멋진 세계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그녀의 꿈을 배반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두 번의 불륜을 차례로 거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열망에 답해 주지 않았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출구였던 불륜마저 진부해져 가면서 에마는 심각한 낭비벽에 빠져들고 결국 경제적 파산으로 음독자살한다.

플로베르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어떤 매개도 놓지 않는 여주인공을 통해 동시대의 정신적 질병, 낭만주의가 초래한 질병을 폭로하고자 했다. 그런데 에마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환상을 현실로 살고자 하는 에마는 단지 어리석기만 할 뿐인가? 에마가 대변하는 ‘환상’의 세계와 상극을 이루며 ‘현실’을 대변하는 오메(Homais)의 세계는 더욱 괴기하고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작가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이 놓인 객관적 주관적 정황을 정확한 비율로 보여줄 뿐이다. 독자는 여주인공의 삶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는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지방 사회의 모습을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소부르주아의 순응주의와 천박한 현실주의를 드러낸다. 특히 ‘마을의 볼테르’ 오메를 통해 맹신과 배타의 논리로 변한 과학과 진보 이데올로기를 풍자한다.

작가가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도 신랄해 사회의 어느 구석에도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 소설에는 미래를 약속하는 어떤 인물도, 어떤 계급도 없다. 플로베르의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비관주의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독자는 환상이나 위로가 없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사회적 낙관론을 펼친 어떤 진보적 작가보다도 예리하고 심각하게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와 공허함을 드러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심리를 분석하고 현실을 재현해 왔다. ‘마담 보바리’가 문학사에 가져온 새로움은 그것을 보여 주는 언어와 기법에 있다.

기다림과 환멸이 반복되던 주인공의 삶을 재현하는 소설의 구조,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시대의 어리석음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식, 특히 소설의 ‘시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다.

‘마담 보바리’가 ‘현대 소설의 수많은 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인 것은 바로 이 소설이 새로운 시대, ‘현대’의 패러다임을 표현해 낼 수 있는 형식을 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동렬 서울대 교수·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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