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0>홍루몽-조설근

  • 입력 2005년 5월 18일 17시 49분


최근 중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면서 중국사회와 문화에 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담론의 상당 부분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단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일 뿐, 중국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의 안내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중국인의 정신세계는 현재의 중국사회 모습을 기준으로 바라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됐다고 말하듯이 중국도 오랜 사유전통을 축적해 왔다. 따라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중국인이 어떤 내면세계를 지녀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루몽’은 그 세계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근대 이전에 출현한 중국의 소설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4대기서’(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에 대한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 작품에 관한 연구가 ‘홍학(紅學)’이라는 독립적이고도 전문적인 분야를 형성할 만큼 그 위상이 대단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홍학가(紅學家)가 활동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특정 작품에 대한 연구가 독립적 연구 분야를 이룬 예는 서구문학에서도 셰익스피어에 관한 연구 정도다.

이 작품의 성격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는데, 바로 이런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 나타난 중국인의 숙명론은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유가(儒家)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의해 지배된다. 주인공 소년 가보옥이 입에 옥을 문 채 태어났다는 얘기는 그의 삶이 숙명적 윤회와 허무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성장기에 접어든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여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보여주는 섬세한 감성의 굴곡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아무리 윤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강조되던 중국사회에서도 이런 감성이 발현되고 표현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관원으로 대표되는 가씨(賈氏) 가문의 영화와 몰락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달은 언제까지나 보름달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진리가 여기에 함축돼 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만이 이 작품의 성격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가 모두 섞여서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며, 독자에겐 총체적인 관찰과 사고를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의 머리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전통시기의 중국인이 지녀 온 내면세계의 다양한 면모라고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내면세계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전개되는 중국사회의 매우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듯한 모습 뒤에는 ‘홍루몽’과 같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면세계의 사고와 감성이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루몽’을 읽는 것은 한때 있었던 과거의 중국을 읽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며,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중국과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서경호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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