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58>객관성의 칼날-찰스 C 길리스피

  • 입력 2005년 6월 1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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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서양 과학의 흐름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과학적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다. ‘칼날’이라고 번역된 ‘에지(edge)’라는 단어는 칼날의 의미 외에 ‘경계’ ‘가장자리’라는 뜻도 지니는데 저자는 아마도 이 모든 의미를 함께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갈릴레이에서 근대과학이 태동한 이래 서양 과학의 발전 과정 전체를 ‘객관성’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연세계가 설명, 이해되고 그 경계가 규정되어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갈릴레이의 천문학과 역학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 책은 하비의 피 순환이론, 베이컨과 실험과학, 데카르트와 기계적 철학, 뉴턴에 의한 종합, 계몽사조와 과학, 라부아지에의 연소이론과 근대화학, 자연사, 진화이론, 열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을 다루면서 이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과학자, 사상가가 등장하고 수많은 과학 텍스트가 분석된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양 과학의 역사상 수많은 과학자와 그들 저서의 내용 및 핵심 구절을 직접 대할 수 있다.

이 책은 학부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아주 높은 수준에서 깊이 있는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이 얻어지는 과정을 갈릴레이가 남긴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첫 부분에서부터, 저자는 직접 텍스트의 분석을 바탕으로 갈릴레이의 사고과정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같은 과정이 천재적 영리함과 성공만이 아니라 오해와 좌절, 실패가 포함되는 긴 우회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국은 운동에 대한 이해가 갈릴레이 같은 사람이 빼어든 ‘객관성의 칼날’을 통해 근대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객관성이 승리하는 단순하고 논리적인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갈릴레이 개인의 상황이나 당시 과학자와 그들이 살던 사회의 여러 여건이 결합되어 진행된 복잡한 과정이었음을 보인 것이다.

그 이후의 장에서도 근대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했던 변화가 진행된 실제 과정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길리스피의 논의가 이어진다. 당연히 직접 그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가 남긴 텍스트가 분석되는데 그들이 단순히 책이나 사람의 이름으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서양 근대과학의 핵심적 이론이나 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주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당시의 사회적, 사상적 배경이 설명된다. 서양 근대과학의 역사상 중요한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일까에 대한,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했던 과학자가 어떤 개인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사색이 개진되고, 독자는 저자와 함께 그 같은 사색을 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딱딱한 과학 텍스트에 담긴 과학자의 생각의 흐름과 그것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조망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근대과학 역사상의 중요한 변화가 그 어느 하나도 단순한 요인에 의해 한 가지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영식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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