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창]탐험 영웅 홀대하는 나라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며칠 전 ‘자전거 여행가’ 르네 월릿(55·캐나다) 씨가 한국에 왔다. 그는 5년 가까이 자전거 하나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거친 곳은 6대륙 54개국에 거리로는 무려 7만 km. 10일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들려주는 그의 경험담은 흥미진진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산악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한 박영석(朴英碩·42·골드윈코리아 이사) 씨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외국 신문과 잡지에서 박 씨의 기사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우쭐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올해 초 대만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초청을 받아 환대받았다는 그는 “미스터 박이 작위를 받아 서(Sir·경)가 됐나요”라고 물었다.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86) 경(卿)이 뉴질랜드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것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귀족이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하여간 엄청난 축하를 받았겠죠, 부러워요.”

기자는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지난달 1일 북극점 도달로 산악그랜드슬램의 쾌거를 이룬 박 씨는 국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부터는 아직까지 ‘한번 만나보자’는 연락도 받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축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극 원정에서 귀국한 지 나흘째인 지난달 16일 박 씨와 원정대원들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초청받아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를 만났다.

그런데 오전 11시에 만나 녹차 한잔 마시며 총리와 마주한 시간은 불과 5분여.

“추웠지요? 고생 많았어요”라고 격려한 이 총리는 “청와대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급히 자리를 떴고 박 씨와 원정대원들은 기념품 하나씩을 받아들고 나와 인근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총리 접견을 위해 오전 일찍부터 서두르느라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

최근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 씨는 힐러리 경으로부터 ‘마이 주니어(나의 아들 또는 후계자)’라는 호칭을 들으며 환대를 받았다. 5달러짜리 뉴질랜드 지폐에는 생존 인물인 힐러리 경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자국 산악인에 대해 자긍심이 높다. 박 씨가 혹시라도 산악인을 대접해 주는 뉴질랜드에 둥지를 틀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전창 스포츠레저부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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