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이달 말 美국무부 통역담당 은퇴하는 김동현씨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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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은퇴를 앞두고 20일 미국 워싱턴의 한국 음식점에서 몇몇 한국 특파원을 만나 ‘미국 통역 외길’ 반세기를 회고하는 김동현 씨.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6월 말 은퇴를 앞두고 20일 미국 워싱턴의 한국 음식점에서 몇몇 한국 특파원을 만나 ‘미국 통역 외길’ 반세기를 회고하는 김동현 씨.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통역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통역을 할 때는 자기 얘기를 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역할을 벗어나게 된 만큼 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 ‘통역 외길’을 걸어 온 미국 국무부 소속 재미동포 통역 김동현(金東賢·69) 씨가 6월 말 은퇴를 앞두고 20일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났다. 직무윤리 때문에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한 숱한 역사의 현장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비밀’로 유지해야 했던 탓인지 어렵게 말문을 연 그의 얘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고려대 영문과 재학시절 시작된 김 씨의 통역 경력은 무려 49년, 반세기에 이른다. 1971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 유학한 뒤 1978년 미 국무부 소속 통역이 된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4명의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국방장관, 하원 의장 등 미국 최고위 인사들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한미 양국 정상들의 대화를 직접 들은 그의 한미관계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지난 60년 동안 파란곡절과 기복의 한미동맹 역사에 비춰볼 때 양국 관계의 현주소는 더 나쁠 것도, 더 좋을 것도 없어요. 일부의 주장처럼 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번(10일) 정상회담을 통해 오해가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므로 어느 때보다 좋다고 말할 것도 아닙니다.”

그는 미군정 혼란기부터 2002년 촛불시위까지 한미 관계에 닥쳤던 위기들을 거론한 뒤 “다시 위기가 온다고 해도 두 나라는 다시 극복해야 하고, 또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한미 간 현안들에 대해서는 “균형자론, 자주외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의 개념은 반미나 친미 논쟁과는 상관없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는 방법이 미숙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4년 제네바 협상에서 윌리엄 페리 특사의 1999년 평양 방문 및 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북-미 간 회담과 협상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1991년 6월 이후 북한을 방문한 횟수만 17번이나 된다.

김 씨는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12시간 동안 모든 대화를 통역하면서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통역으로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북-미 관계에 대해 그는 “평양이나 워싱턴 모두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서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때 참모가 써 준 말씀자료를 옆에 놓고 말했는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젊어서인지 말씀자료를 참고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말을 잘하고 논리적이지만 자료를 참고했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한국 정부의 입장이나 꼭 해야 할 말을 자기 스타일대로 잘 소화해서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이후 양국 간 합의문 조율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진통이 가장 컸던 것은 노 대통령의 2003년 방미 때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스타일에 대해 김 씨는 “직설적이고 솔직해 내용에 혼돈이 없을 정도로 자기 입장을 분명히 얘기한다”고 평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디스 맨(this man)’으로, 노 대통령을 ‘이지 맨(easy man)’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의 스타일의 문제일 뿐 상대를 낮추거나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한 표현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으로 미국 대통령의 영어 통역까지 된 그에게 영어와 통역을 잘하는 비법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문법이 좀 틀리더라도 명사와 동사만이라도 큰소리로 자신 있게 말하면 듣는 쪽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습니다.”

훌륭한 통역의 요건으로 그는 언어 구사력과 취급하는 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전문지식, 그리고 타고난 말재주를 꼽았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한미 양국의 이해 증진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그는 8월부터 1∼2년 정도 한국에서 강연과 연구 및 집필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동현씨는

△1936년 11월 서울 출생

△1961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

△1961∼71년 유엔군방송 번역기자, 한국지부 편집국장

△1978∼현재 미국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으로 4명의 대통령과

부통령 등 고위 인사들의 통역, 북한 17회 방문, 각종 한미·

북-미회담 및 6자회담 통역

△1986년 미국 시민권 취득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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