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수형]닭의 비극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바이양뎬(白洋淀)이라는 호수가 나온다. 호수 주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놀이공원이 있고, 공원 안에는 수사자 2마리와 암사자 1마리가 있는 조그만 사자 우리도 보인다.

사자 우리 옆에는 닭장이 하나 있는데 수십 마리의 닭이 갇혀 있다. 사자 먹이용이다. 중국 돈 20위안(약 2600원)을 내면 닭 한 마리를 준다. 관광객들은 그 닭을 집어 사자 우리에 던진다.

닭은 푸드덕 날갯짓을 하다 사자 우리로 떨어진다. 사자는 닭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앞발로 닭의 몸뚱이를 낚아챈다.

사자의 닭 사냥은 의외의 모습으로 진행된다. 사자는 살아 있는 닭의 털을 하나씩 뜯어 나간다. 아주 섬세하고 정확하게. 겁에 질린 닭은 신음소리도 못 낸다.

털을 다 뽑은 뒤 사자의 식사가 시작된다. 사자는 산 닭의 살점을 차근차근 물어뜯어 먹는다. 마지막 다리 한 조각까지…. 그 장면은 차라리 엽기적이다.

이달 초 중국 여행을 다녀온 지인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자는 생존을 위해서지만 인간은 관광을 위해 이렇게 잔인한 모습을 연출한다.

지인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리얼하게 보여 주며 비참하게 죽어 간 닭의 명복을 빌어 주고 그 자리를 떴다고 한다.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種) 가운데 닭만큼 비참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만 하루에 80만 마리의 닭이 도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하루에 약 1억 마리의 닭이 죽는다고 한다.

닭은 왜 이처럼 비참하게 됐을까. 일차적으로는 인간을 비롯한 강자(强者)의 식탐(食貪)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닭 스스로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닭은 원래 날짐승이다. 다른 조류처럼 날개가 있다. 그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곡식과 벌레 등을 먹고 살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날개의 근육이 약해져 갔다. 굳이 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속담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에도 닭은 지붕 정도는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받아먹는 행동에 더 익숙해지면서 요즘의 닭은 아예 날지 못하게 됐다.

이것이 닭이라는 종의 비극의 본질이다. 놀이공원에서 사자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 닭도 관광객이 던졌을 때 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푸드덕거리기만 했을 뿐 날지 못하고 사자 우리로 떨어졌다.

닭의 날개는 조류로서 닭의 존재의 근거다. 날지 못하는 날개를 가진 닭은 날짐승으로서 존재의 근거를 상실한 것이다.

모든 존재에게는 ‘닭의 날개’와 같은 것이 있다.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 좀 비약해서 말하면 ‘아이덴티티(정체성)’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존재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닭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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