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와 9시엔 택시 타기를 피하는 게 좋다. 운전대 잡은 이가 라디오뉴스를 듣다 흥분하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지방 땅값 치솟는다는 뉴스에 택시 운전사는 한참 열을 내더니 잠자코 있는 내게 물었다. “강남 사세요? 어제는 노사모 아줌마가 그럽디다. 대통령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 알고 그러느냐고.” 나도 ‘내재적 접근’을 해보려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혁신 컨설턴트’처럼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읽는 보고서’를 보니 왜 대통령이 우리 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요약’에는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중상(中上) 규모의 경제로 파악’ ‘희망의 객관적 인식에 근거한 자신감 회복이 핵심과제’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국가인적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계획 보고서’는 인적자원 개발이 국가 발전의 핵심과제라며 시작한다. 맞다. 그래서 국가인적자원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학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학별 특성화를 추진한다고 결론 맺는다. 시장경제 상식은 경쟁을 해야 경쟁력이 큰다는 거다. 대학끼리 경쟁하게 풀어줘야 특성도 생기고 세계적 대학도 나온다. 국가위원회가 나서야만 인적자원이 나온다는 발상은 전체주의적이거나, 엉뚱하다. 소득 2만 달러 시대 실현을 위한 신(新)일자리창출 전략을 보면 왜 빵집 세탁소의 자격증 제도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유가 ‘자영업 감소 필요’였다. 대뜸 규제부터 만드는 참여정부의 특징이 드러난 셈이다. 공개된 정책보고서가 이 정도니 대통령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 알고도 남겠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일이 사실은 안 해도 될 일이며, 나서서 망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세계은행은 국방, 법과 질서 확립, 사유재산 보호를 국가가 해야 할 일 중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산업정책이나 부(富)의 재분배는 맨 나중이자 경제학자의 시각에선 안 해도 될 일에 속한다. 기본적 책무도 못하면서 오지랖만 넓은 정부는 최악이다. 세계은행이 5월에 발표한 우리 정부의 효율성은 209개국 중 42등이다. 효율적 정부를 지향한다는데 2년 전에 비해 4계단 떨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개인, 기업, 정부의 경쟁력이 각각 11, 15, 19위라고 했다. 못난 정부가 저보다 잘난 개인과 기업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를 잘되게 하는 데 정부 주도가 좋은지 아닌지, 독재가 나은지 아닌지에 대해선 학설이 분분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부와 리더의 유능함이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이 ‘정부는 능력만큼만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정부의 마당발은 꿈쩍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온 국민의 삶에 간섭하는 좌파적 성향에다 개혁의 이름으로 벌인 일이 너무 많아서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쳐도 소용없다. 국정목표가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다. 더불어 사는 게 경제보다 중요할 수 있다.
결국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먹고살기 위해선 가능한 한 정부에 발목 잡히지 않고 각자 뛸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잘리지 않는 ‘언터처블’이 되려면 박지성 선수처럼 글로벌시장에서 팔리는 재능을 갖거나, 컴퓨터 작업으로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지식노동자가 되거나, 요리사 간호사 택시 운전사같이 이 땅에 사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최선이다. 아니면 직업과 일자리의 변화 흐름을 좇아 배워가며 살아남는 적자(適者)가 되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변하기를 고대하는 것보다는 이게 빠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