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의 임시헌장과 신익희의 임시헌법 이래 기본권 목록의 제1순위는 줄곧 ‘평등’이었다. “여자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서 보통선거권을 성문화한 임시정부 ‘헌법의 어버이들’의 사회의식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반상과 귀천을 나누고 남녀와 적서를 따지고 동서남북과 노론소론을 편 가른 조선 500년의 차별과 분열의 역사가 결국 국권상실을 초래했다는 뼈아픈 반성이 바로 이 두 글자 속에 녹아 있다. 그 후 군사정권의 립 서비스로 제공된 인간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조항이 권리장전의 선봉으로 눌러앉기 전까지, 평등 조항은 우리 헌법전에서 부동의 제1 권리로 자리 잡게 된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1999년 8월 15일, 전직 대통령 아들에 대한 광복절 특사 소식을 접한 무기수 이모 씨는 대통령의 불공평한 사면으로 공화국 국민의 신성한 주권적 명예가 침해되었다고 느꼈다. 헌법소원 청구서에 편철되어 헌법재판소로 접수된, 16절 갱지에 연필로 비뚤비뚤 써 내려간 사연에는 한 조각 권리를 호소하기 위하여 그가 흘렸을 땀과 눈물이 절절히 배어 있다. “가석방도 90% 이상 형기를 살아야 일부가 혜택 받을 뿐인데, 정치 흥정으로 형기의 4분의 1도 살지 않은 자에게 특별사면을 내리는 것은 특권층을 차별적으로 우대하여 일반 수형자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내려치는 칼날처럼 단순하고 명료했다.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자기 관련성이 결여되어 부적법하므로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각하한다.”
최근 정부는 176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방침을 발표했다. ‘지방’ 주민은 85%의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에 놀랐고, ‘중앙’ 언론사들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이 방침을 비판하는 상황에 다시 놀랐고, ‘귀양 가는 벼슬아치’처럼 지방에서의 삶을 걱정하는 공공기관 근무자들의 모습에 더욱 놀랐다. 이러한 분권 정책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곧 ‘서울공화국’일 수는 없다는 현실적 자각의 발로이며, 헌법이 정한 ‘지역 간 균형 있는 발전’의 구현이자 ‘어디에 살건 고루 평등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우리의 반대도 ‘대포로 참새 잡는 식’의 무모한 정략적 접근을 경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전의 전직 대통령 아들과 체육계 거물에 대한 가석방은 ‘평등한 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법의 칼날이 갑자기 무뎌지는 나라라면 ‘공화국’이라 부를 수 없다.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거부하는 것이 ‘공화국’의 헌법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고위직을 둘러싼 협상의 결과 솜방망이 처벌로 봐주는 법이라면 ‘평등’한 법이 될 수 없다. 자의적 법집행을 배제하는 공정함이야말로 ‘평등’ 원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이 지경으로 죽여 놓았으면 ‘정의’는 살려야 할 것 아닌가.
공화국 조항과 사회적 평등의 명문화로 유명한 바이마르헌법에 대하여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비꼬았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도대체 어디로 ‘가느냐’”라고. “집도 없는 사람에게 주거의 자유가 무슨 소용이냐”라고.
자고로 시인이란 생리상 ‘법’에 대해 비판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시로 국민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이 ‘건망증공화국’에서는 헌법학자조차도 1920년대식 구닥다리 풍자시를 읊조릴 수밖에 없다. “법 앞의 평등이라면 법 뒤는 불평등이냐!” “헌법에 보장된 것이 주거의 자유냐 주택 도박의 자유냐!”
신우철 영남대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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