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대’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조씨 일가에서 맨 앞자리에는 조부 조의관이 서 있다. 그는 주자학의 명분론에 집착하고 있는 봉건주의자로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재산을 이용하여 벼슬을 사고 집안의 족보를 거짓으로 다시 꾸미고 보잘것없는 가계를 명문거족의 후예로 가장한다. 그리고 조선 사회의 붕괴나 일제의 침략과 같은 역사의 격변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개인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예를 최대의 가치로 내세운다.
조의관의 아들인 조상훈은 국가 상실의 시대에 사회에 나오게 된 새로운 계층에 속하는 인물로서 외국 유학을 통해 근대적 문명에 대한 이해와 서구적 교양을 갖추게 되었지만, 자기 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 그의 이상주의적 태도는 그 지향성 자체가 지니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결여됨으로써 실천적인 구체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부친이 만들어 놓은 재산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 안일만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인격 파탄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의관과 조상훈 사이에 일어나고 부자간의 대립과 갈등의 끝자리에 손자 조덕기가 위치하고 있다. 일본 유학생의 신분으로 그려지고 있는 조덕기는 할아버지인 조의관으로부터 상당한 기대를 얻고 있다. 조덕기는 조부의 강권으로 학생 신분이지만 일찍 결혼했고, 전통적인 규범에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는 시대상의 변화에도 눈을 떠서 지식인 청년들이 벌이는 좌익운동에도 동정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조부에 대한 경외감과 부친에 대한 동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가문을 지키면서 명분 있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그의 사회적인 위상은 그가 조부 조의관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허세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부친인 조상훈의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적인 태도에도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소설 ‘삼대’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가족주의의 완고성과 식민지 현실의 폐쇄성은 조씨 일가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하는 조덕기라는 인물의 형상을 통해 그 극복 방향이 어느 정도 암시된다. 조덕기는 조부와 부친이 각각 추구하고 있는 서로 다른 가치를 통합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시킬 수 있는 합리적 현실주의자로서 식민지 상황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에도 철저한 면모를 자랑한다.
그가 온건한 이념주의자로서 식민지 현실 문제에 대한 개량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의 지향점이 어디에 맞닿아 있는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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