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日후소샤교과서 저지운동 사령탑 다와라 요시후미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문제투성이의 교과서로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일본 우익 진영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문제투성이의 교과서로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일본 우익 진영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숨이 턱턱 막히는 섭씨 35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그를 찾는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일본 도쿄(東京) 도심 지요다(千代田) 구의 10평 남짓한 허름한 사무실. 얇은 셔츠 차림에 소매를 걷어 올린 그는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받으면서 무언가를 꼼꼼히 메모하곤 했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64) 사무국장.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집필한 후소샤(扶桑社)판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는 시민운동의 총지휘자다.

4년 전 각 지역에 뿔뿔이 흩어진 학부모 단체를 조직화해 후소샤 교과서의 채택률을 0.039%로 묶은 다와라 국장은 산하단체 회원들의 운동을 독려하다 모처럼 도쿄로 돌아와 전국 상황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8월 말로 다가온 각 지역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채택시한을 앞두고 상황을 묻자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익세력이 ‘경계대상 1호’로 꼽는 ‘맹장’의 답변치고는 지나치게 겸손하게 들렸다. “4년 전엔 ‘새역모’와 일부 우익만 상대하면 됐는데 이번엔 집권당인 자민당 전체가 작심한 듯 나서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을 막아내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솔직히 점치기 어렵습니다.”

다와라 국장은 “시민운동 진영이 힘을 많이 키웠기 때문에 ‘새역모’와 일대일로 겨룬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데…”라며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안타까워했다. 4년 전 2000명이던 ‘네트21’ 회원이 5500여 명으로 늘어난 반면 새역모는 우익의 조직적 지원을 받고도 800여 명에 불과하다.

‘네트21’이 최근 도쿄 나카노(中野) 지역에서 개최한 강연회에는 우익세력이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불량배들이 난입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는 “한두 번 협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착잡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다와라 국장은 향후 전망을 묻는 거듭된 질문에도 “후소샤 채택률이 몇 %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발언에 기자가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자 씩 웃으면서 “단 한 곳에서도 후소샤가 발을 못 붙이게 한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의 교과서 정세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후소샤 채택률이 4년 전보다 상당히 상승할 것은 확실시된다”며 “다만 몇 %나 오를지가 관심”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우익 성향이 강한 미야자키(宮崎), 구마모토(熊本) 등 규슈(九州)와 중부 지방의 히로시마(廣島), 에히메(愛媛), 고베(神戶), 극단적 우익 보수주의자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지사의 입김이 센 도쿄 도와 수도권 사이타마 현 등은 ‘새역모’ 측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도쿄 도 교육위원회가 후소샤 교과서를 부각시킨 자료를 산하 교육위에 배포한 데 이어 한 자치구의 교육위에선 위원 5명 중 3명이 후소샤에 동조하는 인사로 채워졌다.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 대부분은 다와라 국장이 지난달부터 강연회 참석 및 현지 시민단체 독려차 바쁜 시간을 쪼개 들렀던 곳이다.

다와라 국장은 그래도 “우리의 싸움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론매체나 정치권을 움직일 힘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들더라도 정공법으로 나갑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문제투성이의 교과서로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호소하면 바로 반응이 오거든요. 정치권의 압력이 아무리 거세도 승부처는 지역인 만큼 주민들의 양식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4년 전 동아일보에 전면으로 의견광고를 냈던 일을 떠올리며 일본의 교과서 시민운동이 양국 국민을 가깝게 이어주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에 광고가 실린 날 아침, 어렸을 때 일본에 살았다는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교과서 문제로 두 나라 관계가 나빠져 마음이 아팠는데 일본에도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너무 기뻤다고 하더군요.”

그는 일본의 많은 시민은 결코 ‘새역모’를 지지하지 않으며, 우익 정치인들과도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한국 국민이 알아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다시 한번 목표를 물었다.

“우리의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학교가 후소샤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는 것, 그래서 일본에서 교과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입니다.”

▼다와라 요시후미는…▼

△1941년 후쿠오카(福岡) 현 출생

△1964년 주오(中央)대 법학부 졸업, 출판사 입사

△1965년 이에나가 소송(문부성의 부당 검정에 항의해 법정 투쟁을 벌인 교과서 문제의 상징적 소송)에 동참하며 교과서 운동 투신

△1988년 교과서소송전국연락회 상임간사

△1991년 일본 출판노련 교과서대책 사무국장

△1998년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 결성에 참가, 사무국장 취임

△2001년 ‘역사교육아시아네트워크-저팬’ 공동대표

△저서: ‘역사검증 무엇이 문제인가’ ‘철저검증―위험한 교과서’ 등 교과서 관련 다수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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