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82>구운몽-김만중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한국 고전소설 중 최고 명작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을 첫손에 꼽는다. ‘구운몽’은 불교의 공(空)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불승인 성진의 세계와 관료인 양소유의 세계가 몽중 액자형식을 통해 대조적으로 교섭하면서 불교의 적멸주의와 유교적 공명주의를 대비시켜 인간의 삶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조명한 작품으로, 사상적 깊이나 인물의 행위와 사건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소설의 기법 면에서 고전소설의 백미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흔히 ‘구운몽’은 일찍이 도암 이재(陶庵 李縡)가 언급한 대로 세속의 부귀공명이 일장춘몽과 같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의 세계로 귀의하는 내용을 담아낸 것이라고 말하여 왔다. 또는 양소유의 여성 편력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절제하는 교육을 받았던 사대부가 억압된 욕망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음껏 발현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구운몽’의 특정 부분에 중점을 두어 이루어진 것으로서 작품 전체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전체적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인물 중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는 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는 육관 대사이다. 반면 꿈꾸기 이전의 성진은 불승의 신분이면서도 세속의 부귀공명을 동경하고 불가의 적막함을 회의하는 미망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육관 대사는 석교 위에서 노니는 팔선녀의 자태를 보고 불가의 적막함에 염증을 느끼고 세속의 공명과 부귀영화를 동경하는 성진을 속계의 양소유로 환생하게 한다.

양소유는 팔방미인으로 환생한 여인들과 별다른 고통 없이 인연을 맺고 승상의 벼슬에 올라 부귀와 행락을 일삼는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삶의 모습은 성진이 꿈을 깨고 난 후의 부귀공명의 무상함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임을 알게 된다. 성진이 꿈에서 깨어 육관 대사를 보고 속세의 부귀가 허망함을 깨달았다고 하자 아직도 꿈을 깨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금강경(金剛經)’ 큰 법을 강설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구운몽’의 진정한 주제가 금강경의 공사상(空思想)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의 의미는 금강경의 공사상을 집약한 것으로, 인세에 존재하는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계와 몽중세계를 분별하려는 마음 자체가 그릇된 집착의 산물이며 진실과 거짓을 따지려는 것 역시 불변의 실체가 아닌 거품이나 그림자와 같은 무상한 대상에 대한 집착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구운몽’은 성진의 삶과 양소유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불교적 적멸주의와 유교적 공명주의가 논쟁과 갈등을 하면서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차원 높은 상승을 지향하고 있다. 즉, 불도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성진이 육관 대사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어 육관 대사와 같은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깨달은 성진의 문하에는 깨닫기 이전의 성진과 같은 세속의 공명을 탐하는 존재가 이어질 것이고 제2, 제3의 양소유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운몽’은 신성과 세속, 불교와 유교, 도념(道念)과 정념(情念)의 영원한 토론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서대석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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