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국제가족’

  • 입력 2005년 7월 9일 03시 19분


순혈주의(純血主義)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혼혈인은 ‘버린 사람’ 취급을 받는다. 글로벌 시대라는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소외된 아동을 위한 비정부기구(NGO)인 펄벅재단 한국지부 홈페이지(www.pearlsbuck.or.kr)에 들어가 보면 지금도 혼혈아를 둔 엄마의 절규가 이어진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다가도, 한국 사회의 편견으로 아이를 잃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가깝게 보면, 우리나라의 혼혈인 문제는 6·25전쟁과 함께 시작됐다. 어쩔 수 없이 미군이 주둔하면서 생긴 ‘역사의 상처’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이른바 3D 업종에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대거 취업하면서 이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코리안+아시안)도 늘어나고 있다.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도 증가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농촌 총각 4명 중 1명이 외국인 여성을 신부로 맞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혼혈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펄벅재단의 조사를 보면 기지촌 출신 혼혈인의 경우 10명 중 9명은 직장이 없다. 10명 중 1명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징집 판정관이 명백한 혼혈인이라고 판단하면 군대에도 갈 수 없었다. 이를 두고 평등권 침해 논란이 일자 정부는 혼혈인이라도 본인이 희망하면 징집할 수 있도록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주한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과 그 가족들이 어제 ‘국제가족 한국총연합회(국제가족 연합)’를 결성했다고 한다. 한국 국민으로서의 평등한 권리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아직 혼혈인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규정도 없다. 지구촌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이제 그들의 외침에 가슴을 열어야 한다. 그들의 딱한 처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 혼혈인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송 대 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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