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과 오찬을 함께할 수 있는 권리가 지난달 e베이 경매에서 35만 달러(약 3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점심 한 끼 같이 먹으며 ‘투자 조언’을 듣는 수업료다. 이 돈은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재단에 기부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가까워지라. 부자를 증오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부자 될 가능성은 적다.’ 부자학의 유력한 훈수와 가설이다.
그런 점에서 부자를 악당 취급하는 부모는 ‘나쁜 부자’보다 더 나쁠 수 있다. 식사에 한번 응해 주고 받는 3억5000만 원을 자선하는 버핏과 그 돈으로 만든 빵을 배급받는 노숙자. 어느 쪽에 서겠는가.
돈, 부(富), 부자를 둘러싼 가정교육 사회교육 국가교육 중에 가장 잘못되고 있는 것은 국가교육 같다. 한국 얘기다.
‘강남 불패(不敗)냐, 노무현 불패냐 두고 보라’고 공공연하게 외치는 것은 서울 강남 사람들을 한통속으로 죄인 취급하는 태도다. 또 재벌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며 약점만 골라 들춰 내는 것은 반(反)기업 정서에 기름 붓는 행위다.
이러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가. 우선 노무현 정권은 강남 때리기, 부자 공격하기로 ‘재미’ 좀 봤다. 흔히 강남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인구는 155만 명으로 전국 인구의 3.2%에 불과하다. 정부가 한두 재벌을 집중적으로 때리면 ‘대리만족’을 느낄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지 모른다. 서울대를 ‘초동진압하겠다’는 것이나 ‘좋은 대학 나와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몰아세운 것도 비슷하다. ‘배 아픈’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진부한 포퓰리즘(인기영합) 정치다.
‘배 아픈’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득이 생기나. 정부는 약자(弱者)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지난 2년 반 사이에 제대로 보호받은 약자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배 아픈’ 사람도 늘고 ‘배고픈’ 사람도 늘었다.
부자들에게 겁 안내고 돈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면 ‘국내 소비 침체, 해외 소비 급증’ 현상이 크게 완화됐을 것이다. 결국 국내 소비의 하방(下方) 침투가 확산되고, 소비 증대가 생산(특히 내수형 중소기업 생산)과 일자리를 늘렸을 터이다.
경영권을 흔들지 않고 제도로 보호했더라면 대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쓴 거액을 일자리 만드는 투자로 돌렸을 법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시민단체가 국가경제 차원에서 SK㈜의 경영권을 지지했더라면 소버린이라는 해외 투기자본이 2년 만에 1조 원이나 되는 이익을 챙겨 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제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은 잡겠다”고 선언했다. ‘하늘이 두 쪽 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경제정책이다. 모든 정책에는 효과와 비용이 동반한다. 투기를 뿌리 뽑을 수단이 있어도 나라 전체가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정책의 조화가 필요하다. 투기꾼을 살찌우라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살리고 성장을 꾀해 다수 국민에게 부자 될 가능성을 열어 주기 위해서다.
국민이 먹고살 것을 만드는 정책에는 죽을 쑤면서 표적사격만 능사로 삼아서는 ‘배 아픔’을 잠시 마취시킬 수는 있어도 ‘배고픔’을 구원할 수는 없다. 노 정권 전반부에 충분히 실험했고 확인했다. 이제라도 그런 노선에서 U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의 세습보다 가난의 세습이 더 문제가 된다. 부자 사냥에 몰두하다 온 국민을 빈곤으로 몰고 간 사회주의 몰락사(史)에서 배울 일이다.
부자를 괴롭히기보다는 다수에게 부자 되겠다는 동기(動機)와 부자 될 기회를 줘야 말 그대로 ‘약자를 위한 정부’다. 자구적(自救的) 노력에 써야 할 에너지를 ‘분노 에너지’로 소진하도록 부추기고, 부자 욕하면서 의타심에 빠지도록 이끌고도 ‘부자 되시오’ 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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