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때로는 과도하게, 채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미 신문과 잡지에 내 나름대로 역사적 평가를 해 본 일이 있다. 오늘은 그 후속으로 김영삼 대통령론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모든 대통령에는 공과 과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치명적인 과도 없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공을 우선 거론하겠다.
우선 그 전임자와 대비해 본다. 노태우 정권은 탄생해서는 안 될, 또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군부 정권의 연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임기 중에 세운 가장 큰 공은 그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적극적인 면보다도 무엇인가를 ‘안 했다’는 소극적인 면에 있었다. 청와대에 입성한 세 번째 4성 장군이었던 그는 그의 지지자나 반대자의 의표를 다같이 찌른 의외의 인물이란 외국 언론의 평도 받았다. “지지자에겐 기관차가 되어 주지 않고 반대자에겐 압제자가 되어 주지 않음으로 해서….” 물론 이건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대통령 노태우는 그가 지닌 최선의 미덕인 ‘안 한다’를 버리고 ‘한다’ ‘하면 된다’는 무리수를 차차 썼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그의 소극적인 정(正)의 업적은 희미해지고 적극적인 부(負)의 업적만 쌓아가게 했다.
안 하면 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강행한 부의 업적 가운데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든다면…. 200만 호 주택 건설을 억지로 밀어붙여 국민 경제의 안정 기조와 성장 잠재력을 크게 뒤흔들어 놓은 일. 여소야대 정국을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개편하기 위해 강행한 3당 통합, 그것은 6공 경제의 신뢰 상실에 이어 6공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붕괴 직전의 소련 및 동유럽 제국에 대해 안 해도 되는,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것을 굳이 나서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밀어붙인 소위 ‘북방정책’. 그래서 급기야 소련에 30억 달러(!)를 갖다 바치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만 떠안고 실속은 차리지 못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김영삼 대통령. 그의 역사적 업적은 전임자와는 반대로 능동적 적극적으로 ‘한다’, 공세적 공격적으로 ‘해치운다’는 데에 있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대통령 김영삼의 가장 큰 치적은 잘못된 과거를 ‘부숴 버린다’는 데에 있었다. 자잘한 것은 제쳐두고 대표적인 두 사례만 들어 본다.
첫째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총독부 건물의 철거요, 둘째는 군부 내 막강한 사조직인 하나회의 해체다. 이 두 가지 엄청난 ‘건설적 파괴’는 대통령 김영삼이 해야 했고 오직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역사적 업적이었다.
찬반 여론이 양분 대립하던 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막상 강행하고 나니 이제는 그에 반대하던 사람조차 잘했다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영남의 군벌조직인 하나회 해체는 영남 출신의 우파 정치인 김영삼 대통령이었기에 능히 할 수 있었다. 만일 호남 출신이나 좌파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손대려 했다면 거센 반발이나 저항 없이 성사시킬 수가 있었을까. 나는 장담할 자신이 없다.
우파의 극렬주의나 과격주의의 일탈은 우파의 지도자가 더 잘 다스릴 수가 있고 그것이 우파를 위해서도 플러스가 된다.
최정호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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