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이이의 처방은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규범 체계인 예를 따르라는 것이다. 개인은 먼저 무조건 그리고 전면적으로 예를 수용해야 한다. 예에 비추어 자신의 욕구가 옳은 것으로 판정되면 욕구대로 행위하고, 그른 것으로 판정되면 욕구를 버리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사회가 개인을 감시하는 장치를 내면화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라고 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이의 철학은, 중국 선진 시대의 순자(荀子)와 송·명 대의 장횡거(張橫渠·본명 재·載), 나정암(羅整庵·본명 흠순·欽順) 등 기철학자의 견지를 잇는 것이기도 하다. 곧 이이는 성악설의 계보에 몸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이는 사회 성원 전체를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처방도 생각한다. 흔히 ‘변통론’ 또는 ‘경장론’이라고 말하는 갖가지 사회 제도적 장치의 고안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관료에게는 인격적 면모보다는 현실의 제도를 운영하고 개선하는 행정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견해는, 당시 서인이 취한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 탄탄한 철학적 기초를 부여해 준 것이기도 하다. 양시양비론이라는 이이의 정치적 태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욕구하는 존재이므로, 달리 보면 인간은 어느 정도 이미 타락해 있다는 점에서 모두 동등하다.
마찬가지로 이이는 동인과 서인이라는 두 정파는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그른 것이 아니라, 양쪽이 모두 옳은 점도 있고 그른 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동인과 서인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다툼은 국가의 운영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므로, 이들을 조정하여 화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척의 국정 간여를 배제하자는 동인의 주장에 직면하여, 이이의 이 같은 주장은 상대적으로 명분에서 밀리는 서인의 견지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자주 들먹여지곤 하는 양시양비론을 실제 정치 현장에서 가장 먼저 전형적인 방식으로 구사했다는 점에서 이이는 양시양비론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이이의 글은 거의 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7권으로 간행한 ‘국역 율곡전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이의 글을 가려 뽑은 선집은 대부분 사상전집류에 포함되어 있어 서점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그중 일반 독자가 사 볼 수 있는 것으로, 내용이 비교적 충실한 번역본은 ‘한국의 유학사상’(삼성출판사·1997)이다. 이 책은 이황과 이이의 저술만을 뽑아 옮긴 것인데, 이이의 저술로는 ‘격몽요결’ ‘동호문답’ ‘천도책’ 등과 함께, 이이가 묵암 성혼(成渾)이나 사암 박순(朴淳)과 논쟁하면서 주고받은 편지, 이이가 국왕 선조에게 올린 ‘인심도심도설’ 그리고 ‘성학집요’의 서문 등을 수록하고 있다.
정원재 서울대 인문대·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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