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담에 걸린 기대감은 과거보다 크다. 6자회담이 시작된 2003년과 달리 이제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를 마친 상태다. 북한이 재처리 시간을 벌기 위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무리 폭압적일지라도 김정일 정권을 공개 비판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협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또 미국의 협상 의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중국과 한국이 미국의 강경책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란 점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한국 정부의 대북 전력 제공 구상은 신선하고 창의적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 구상에 동의하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도 북한의 핵 폐기에 상응하는 양보를 할 의지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주도권을 강화해 줄 것이다.
물론 상황 진전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은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은 회담이 실패하는 상황이 올 경우에도 경제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평양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의 북한은 전기제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북한이 회담에 복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가운데 무엇이 진짜 이유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첫째, 북한이 전 세계를 상대로 협상 복귀를 거부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입지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회담에 복귀한 것이 아니라 외부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 된다.
둘째, 평양은 미국(혹은 일본 포함)을 한국 중국 러시아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로 회담에 복귀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상은 순수하지 않은 데다 마키아벨리적인 접근법이다. 북한의 목적은 핵 폐기 없이(혹은 일부분만 폐기한 채) 한국의 전력을 공급받고, 중국과 한국의 기존 경제지원을 받으려는 것일 수 있다. 가령,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은 시인하지 않은 채 플루토늄 방식의 핵만 포기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한국은 초기엔 미국 정보당국의 HEU 프로그램 정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의 HEU 폐기 요구를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이런 전략이 먹혀든다면 그들은 전력을 더 공급받는 동시에 부분적이나마 HEU 프로그램을 통해 핵 억제력을 유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지도부는 그토록 바라던 한미동맹 이완이라는 부수적 이득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북한은 협상을 진짜로 원하는지도 모른다. 부시 행정부 수사(修辭)가 부드러워지고, 일방적 군사공격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한국의 전기 제공 구상이 공개된 외부 환경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낙관주의가 평양을 감싼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 포기를 결심할지도 모른다.
마이클 오핸런·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