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고이즈미 强手 , 파벌재편 노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일본 정치 재편에 나섰다. 자민당은 규제 완화를 비롯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작은 정부파’와 재정 지출에 의해 표를 확보하는 ‘큰 정부파’ 양쪽을 껴안고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도 역시 노동조합 등을 기반으로 하는 ‘큰 정부파’와, 때로는 자민당 이상으로 시장 자유화를 추진하는 ‘작은 정부파’ 양쪽이 있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된 것을 계기로 중의원을 해산한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 속의 ‘큰 정부파’를 부수고, 나아가 민주당 안의 ‘작은 정부파’를 빼앗아 오려 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를 ‘큰 정부 당’과 ‘작은 정부 당’으로 재편하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의 첫째 목표는 정치 이권의 해체다.

자민당은 과거 50년간 대부분을 집권 여당으로 보냈다. 이런 나라는 드물다. 일본은 장기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와 여당이 사실상 하나가 돼 거대한 기득권을 형성했다. 우정 문제가 그 전형적 사례이다.

다른 나라라면 야당이 들고일어날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당 내부 쇄신을 통한 기득권 해체에 착수했다. 이번 중의원 해산도 사실상 선거 압승을 통해 민주당 내 개혁파를 흡수하려는 의도가 감춰져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또 다른 목표는 구 다나카(田中)파의 해체다. 당내 최대 세력을 자랑하며 우편저금 등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재정 투융자를 좌우해 온 것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이끌던 구 다나카파(하시모토파)이다. 이 파는 내부 투쟁을 거치며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로 계승됐다. 반면 고이즈미 총리가 속한 파벌 청화회(淸和會·모리파)는 정치 이권 대부분을 구 다나카파에 빼앗겨 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개혁은 구 다나카파의 이권을 박탈해 청화회와 구 다나카파의 역학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기득권 해체를 추진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진짜 목적은 구 다나카파의 기득권을 자신의 파벌 아래 두려는 것인지 모른다.

이뿐이라면 이번 선거는 일본의 국내정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일본의 외교상 중대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으로 말해 국내정치에서 개혁파는 외교정책상 내셔널리스트(국수주의자)와 거의 겹치기 때문이다.

이권에서 배제돼 온 청화회는 자민당 속에서도 가장 이데올로기성이 높은 집단이다. 그리고 청화회에 그치지 않고 우정개혁과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의원의 상당수는 일본의 자긍심을 되찾는 내용의 교과서(후소샤판 역사왜곡 교과서 등을 지칭)를 채택하자든가,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개헌 등의 국수주의적 정책을 추구해 왔다. 반대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고이즈미 총리에 맞서 2003년 10월 정계를 은퇴한 전 자민당 간사장)를 전형으로 하는 ‘큰 정부파’는 국수주의 돌출을 견제하며 한국, 중국과의 관계 안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지켜왔다. ‘작은 정부 당’과 ‘큰 정부 당’으로의 분열은 유연하고 실무적인 외교정책과, 이데올로기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외교정책 간 대립 구조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이번 선거의 어려움이자 두려움이다. 우정 이권을 시작으로 하는 기득권 해체에 찬성한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국수주의를 위한 교과서 제정에는 반대한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느 당에 표를 던져야 좋을까. 그리고 이권 해체를 지지하는 국민이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에 투표했을 때 일본의 아시아 외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