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다는 ‘한편’에 서 있다. 걱정하고 경고하는 ‘다른 한편’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는다. 경제 성적표가 나쁘다는 ‘다른 한편’의 채점을 뒤집으려고만 한다.
트루먼은 조소했지만 경제는 역시 ‘한편’과 ‘다른 한편’의 조합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 첫날 TV에 나와 ‘좋은 성적’을 열거했다. 신용카드발(發) 금융불안이 걷히고, 주가가 뛰었으며,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높여 줬다고 그래프를 보이며 설명했다.
지표가 나쁘면 정부 탓만 하고, 좋으면 딴 데로 공(功)을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나아진 것에 대한 정부의 노력도 인정해야 한다. 요즘의 산업은행은 카드문제를 비롯한 부실기업 대응을 과거 정권 때보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른 한편’도 있다. 노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데 대해 김대중 정부 시절에 키운 ‘거품 경기’ 탓을 자주 한다. 그러나 증시가 뜬 데는 지난 정부 이래의 기업 구조개선이 효자 몫을 하고 있다.
S&P는 지난달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올렸지만 아직도 외환위기 전(AA-)보다 두 단계 낮다.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5단계 높은 최고등급(AAA)이고, 홍콩과 대만도 두 단계 위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계속 어렵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매우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거나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경제를 어둡게 말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경제에 대한 낙관과 정책에 대한 과신도 절제할 필요가 있다. 근거가 약한 낙관은 빗나갈 우려가 높다. 지난 2년 반 동안 적지 않게 경험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시장의 실패’ 탓이라고 강조하지만 많은 국민은 ‘정부의 실패’를 더 크게 본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에 호응이 적다.
2002년 대선 때 노 후보 찬조연설을 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가 며칠 전 본보 기자에게 말했다. “문제는 경제라예. 경제만 살았어도 (노 대통령이) 저렇게는 안 당할 긴데….”
이 씨가 “제발 다른 거 생각 말고 경제만 신경 써 달라”는 것은 노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다. 그가 경영하는 아귀도매점 수입은 전성기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다수 국민의 경제적 체감만 좋으면 대통령 지지율이 29%로 내려앉기는커녕 경제를 어둡게 말하는 쪽이 오히려 몰리지 않겠는가.
한국은행은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이 1990년대 연평균 6.1%에서 올해 4.6%로 떨어졌고, 자칫하면 앞으로 10년간 4%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래가 밝다는 대통령과는 ‘다른 한편’의 분석적 전망이다.
매년 7%를 공약했던 현 정부하의 실질성장률은 재작년 3.1%, 작년 4.6%, 올해 상반기 3%대로 잠재성장률도 못 채웠다. 기초체력이 약해지는 데다 있는 힘조차 다 못써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으면 양극화 해소도 물 건너간다. 세금으로 부자를 아무리 때려도 아랫목보다 윗목의 냉기가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값 좀 떨어뜨린다고 실업자나 영세민이 그 집을 가질 수는 없다.
서민과 중산층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은 있다. 투자부터 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장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도 안심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이 변해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황소가 도자기 가게에 뛰어드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사유재산권과 시장원리를 흔드는 것은 헌법정신에 안 맞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득책(得策)일지 의문이다. 서민의 아픈 배를 마취시킨다 해도, 임기 2년 반에 대선까지 15개월이나 남았으니 그 사이에 마취가 풀릴 가능성이 높다.
양극화 해소라는 ‘한편’의 명분 때문에 민생의 하향평등이라는 ‘다른 한편’의 결과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모든 정책에는 함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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