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인 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관념철학, 대중문화론, 미학, 정치이론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가 독자적인 형이상학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굵직한 철학 전통을 대중문화와 접목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책은 ‘삐딱하게 보기(Look-ing Awry)’라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사물을 보는 여러 방법 가운데 지젝은 삐딱한 방식을 주목한다. 예컨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자. 이때 눈물 때문에 흐릿하고 찌그러져 보이는 상태가 모든 것이 또렷하고 정확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옳다’는 것과 ‘진실하다’는 것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진실할 수 있는 것이다. 폴 세잔을 비롯한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들이 추구한 것도 시각의 진실성이었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대표주자인 라캉은 소위 욕망 전문가다. 욕망의 대상이자 원인인 ‘오브제 아(objet a)’는 욕망으로 ‘왜곡된’ 응시에 의해서만 인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객관적 시선을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캉이 생각하고 지젝이 인용한 그림이 바로 한스 홀바인의 ‘대사(大使)들’이다. 이 그림에서 두 인물 앞에 엉뚱하게 놓여 있는 하나의 일그러진 형상을 주목해야 한다. 이 수수께끼 같은 형상은 그림의 다른 내용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하나의 오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를 일정한 시각으로 보면 해골 형상이 또렷이 드러난다. 라캉은 이 그림을 예로 들어 욕망이 홀바인의 해골과 같이 엉뚱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현실세계와 사회적 상징세계에서는 오점이지만, 비스듬히 보아 해골처럼 명확한 모습으로 도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지젝은 욕망과 그 대상이 현실(reality)과 실재계(the real)의 갈등 관계 속에 작용한다는 것을 대중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실재가 현실세계에 침입하는 구조를 공포소설, 탐정소설, 대중 로맨스,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를 들어 분석한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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