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정부의 자위권’

  • 입력 2005년 9월 9일 0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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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뜻하는 영어 ‘거번먼트’는 원래 ‘배의 키를 조종한다’는 의미다. 권력의 키를 잡고 조타(操舵)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이 꼭 같다. 권력 농단(壟斷)이라고 할 때의 ‘농단’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높은 단 위에서 저잣거리를 내려다보며 이익을 취하는 행위가 바로 농단이었다. 백성이 들여다보기 어려운 조타실, 즉 높은 데 위치한 정부와 거기 속한 관리들의 농단은 늘 경계해야 했다.

▷‘정부라는 것은 맨 위에서부터 물이 새는 유일한 그릇이다.’ 미국의 신화적인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의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도 ‘정부란 모든 인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집단’이라고 했다. 정부가 그만큼 위태로운 존재이므로 감시의 눈길을 거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민주주의는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장치의 강화와 역사를 함께해 왔다.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에 언론도 한몫해 왔다. 그러나 ‘조타실에서의 배타적인 농단이 달콤하고 즐거운 관리’들은 완강히 저항해 왔다. 심지어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택일하라면 후자’라고 선언한 토머스 제퍼슨조차도 행동은 달랐다고 작가 리처드 셍크먼은 전한다. 제퍼슨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적대적인 신문들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도록 정부에 종용했다는 것이다. 권력의 두 얼굴이다.

▷언론에 대한 ‘정부의 자위권’ 운운하는 소리가 청와대에서 나왔다. “왜곡 매체에 대해 기고, 협찬을 거부하는 것은 취재원(정부)의 자위권”이라는 것이다. 1989년 국회 광주사태 청문회에서 ‘자위권’이라는 말이 나온 이래 두 번째로 듣는다. 시민에 대한 발포를 군의 ‘자위권’이라고 했다가 “양민학살이 자위냐”는 큰 반발을 샀다. 자위권은 호랑이가 토끼에 대해 갖는 권리가 아니다. 부동산 파동에서처럼 속고 손해만 보는 ‘토끼’들의 ‘알 권리’를 돕는 언론에 대해 할 말이 아니다. ‘정부의 자위권’이라는 말을 ‘참여정부’로부터 듣는 것은 아이러니다. 참으로 기막힌 ‘언론 탓’은 언제 끝날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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