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34>플로베르의 앵무새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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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의사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는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루앙 병원 전시관에서 박제된 앵무새를 본다. 횃대 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플로베르가 루앙 박물관에서 빌려온 새. 소설 ‘순박한 마음’을 쓰는 동안 책상에 놓았던 새. 이름은 룰루, 소설 속에 나오는 펠리시테의 앵무새이며,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아마추어 플로베르 연구가인 브레이스웨이트는 이 박제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그가 크루아세 기념관에 가면서 이 박제의 가치는 모호해진다. 그곳에서도 플로베르가 키웠다는 또 다른 앵무새의 박제를 만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진위를 가리기 위해 그는 학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장편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두 개의 박제를 둘러싼 모험담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느 게 진짜 플로베르의 책상에 놓였던 건지 밝히는 과정처럼 보인다. 심층적으로는 역사(혹은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게 가능한지 문제 삼는다. 최근 아내와 사별한 브레이스웨이트는 아내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에서 ‘플로베르 순례’를 떠났던 것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플로베르에 관한 온갖 지식들을 갖고 있다. 그 지식들은 때로 통념을 배반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다면체와 같은 플로베르의 삶을 두고 브레이스웨이트는 배에 달린 망원경을 빗대 얘기한다. 이런 식이다. ‘과거란 멀리 사라져 가는 해안선과 같다. 우리는 변치 않는 진리를 바라보듯이 망원경으로 해안을 본다. 하지만 망원경에 시시각각 비치는 해안은 환상일 뿐이다.’

언어 감각이 뛰어난 반스가 장마다 다르게 구사한 문체가 객관적인 사실을 비춰 보이는 이 망원경의 역할을 한다. 그의 소설 형식은 내용을 포함한다. 플로베르의 말에 따르면 “형식은 사고(思考)의 육체”다. “예술에 있어 모든 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소설에는 브레이스웨이트가 작성한 플로베르의 세 가지 연보가 나온다. 일반적인 연보, 죽음 질병 개인적 비극 등이 나열된 부정적 연보, 편지에서 인용한 글귀로 재구성한 연보 등이다. 플로베르 작품 속의 동물들 이야기를 다룬 ‘플로베르의 동물 열전’도 인상적이다. 플로베르는 자신이 ‘곰’이라고 생각했다. ‘곰’과 ‘플로베르’를 둘러싼 반스의 지식은 논문 한 편을 쓸 정도로 해박하다. 이 밖에도 이 소설에서는 플로베르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눈동자 색깔을 둘러싼 ‘에마 보바리의 눈’, ‘철도와 플로베르’ 등이 소논문, 시험 문제, 혹은 단편소설 등의 형식으로 나온다.

다양한 만화경의 세계는 결국 어느 쪽이 진짜 플로베르의 앵무새인가라는 물음으로 집약된다. 브레이스웨이트의 아내 엘렌은 에마 보바리처럼 간통을 저질렀다. 이 부부는 ‘행복했고 불행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한 엘렌의 호흡 보조장치의 스위치를 누르면서 브레이스웨이트는 이렇게 생각한다. “엘렌. 나의 아내. 죽은 지 100년 되는 어느 외국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도 더 알지 못한 사람.”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나온 모든 다채로운 글들은 바로 브레이스웨이트의 이 독백에 대한 주석이다.

김연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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