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경제대통령 박정희는 소급 응징의 주적이다. 한 달 뒤면 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만 26년이 된다. 그러나 박정희 때리기는 머잖아 메인게임으로 접어들 조짐이다.
박정희는 독재로 장기집권했다. 국민기본권을 적잖게 짓밟았다. 때리기 선수들은 낱낱이 들추어 낼 것이다. 큰딸이 무대 위에 있는 한 끝내지 않을 듯하다.
묘하다.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든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 18년에 대해선 거품을 물면서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60년 왕조에는 한없이 따사롭다. 3대 수령 이름까지 떠올랐지만 아랑곳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후손 만대의 행복을 위한 토대를 튼튼히 다져 놓았다”고 뽐냈다(23일자 노동신문). 이런 자랑을 담은 세습체제 선전극 ‘아리랑’을 보러 남쪽에서 9200명이 평양에 간다. ‘김일성 조국’의 김정일 우상화에 박수도 칠까. ‘후손 만대의 행복’은 누구 후손의 행복일까.
보릿고개를 없애려고 고투한 것은 박정희의 과오였나. 수백만 인민을 굶겨죽이고 강제수용소에 가둬 죽인 수령 부자가 숭배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마저 든다.
살아있는 1등도 죽을 맛이다. 서울대는 진압 대상이다. 좋은 학생 골라 뽑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다. 세계 100대 대학 하나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희비극(喜悲劇)이다. 서울대가 내려앉는다고 다른 대학들의 경쟁력이 저절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니 저마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
대학에까지 평준화 깃발이 펄럭인다고, 그거 믿고 공부 안하는 학생은 십중팔구 후회할 것이다. 기업이 학력(學歷)은 제쳐 놓고 ‘능력’만 보고 채용한다 해도 측정 가능한 능력의 핵심은 학력(學力)이다. 평등교육을 외치는 고위층이 자식에겐 왜 과외를 시키는가.
정부는 8·31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며 국민을 98%와 2%로 갈랐다. 세금은 98%를 위해 2%에게만 때리는 ‘초정밀 유도탄’이라고 멋진 비유까지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그제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에게 ‘부동산 보유세 인상의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보냈다. ‘8·31 대책으로 노인가구의 평균 보유세는 2.2배가 된다. 보유세 강화는 비인기 지역 서민용 소형 주택에 더 큰 영향을 줄(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자산가치 하락의 피해가 서민층에 돌아갈 수 있다. 고급 주택은 저금리에다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기대수익이 여전히 높다.’
이 보고서는 “특히 노인가구는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가처분 소득이 일반 가구보다 많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소비가 더 위축될 요인이 된다는 얘기다. 과연 98%가 ‘초정밀 유도탄’에 박수칠 수 있을까.
재벌은 동네북이다. 세계시장에 나가서는 초일류 기업으로 각광받지만 국내에선 체포조(組)에 시달린다. 적잖은 첨단 대기업에서는 오너도, 전문경영인도, 근로자들도 하루에 이틀만큼 일한다. 과로를 못 이겨 쓰러지는 임원도 있다. 정권과 시민단체 사람들이 이처럼 치열하게 생산적인 일을 해 왔다면 경제가 지금보다는 나을 법하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브랜드가치가 149억 달러다. 소니(107억 달러)보다 39%나 높다. 피땀 흘리며 추격해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 그리고 신용을 다진 결과다. 삼성그룹은 한국 수출의 20%를 해내고 국민 총세금의 6%를 부담한다. 자체 종업원 20만 명에 협력사를 포함하면 100만 명이 이 그룹과 삶을 함께한다.
정권이나 시민단체가 기업들을 도와준 게 뭔가. 투자를 해외로 내쫓고, 일자리와 소비도 물 건너가게 한 것 말고 뭐가 있나.
정권이 ‘국민에 대한 서비스 제고’라는 품질경쟁력과 ‘세금효과 극대화’라는 가격경쟁력, 그리고 ‘언행일치’라는 신용을 착실히 쌓았다면 어땠을까.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상황”(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도 면했을 것이고, 민생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으리라.
배인준 논설실장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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