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뒤 내게 다시 ‘나인 하프 위크’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 등장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 ‘카르멘’의 색이기도 한 강렬한 블랙과 레드의 이미지가 책 표지에 선명하게 드러난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이 그것이다. 레드와 블랙은 ‘피와 죽음’이다. 이 피와 죽음은 바로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 겸 중세전문가로 일하면서 프로이트를 접하고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리며 저술활동을 펼쳐 나간 바타유가 평생에 걸쳐서 연구하고 글로 남긴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색이다. 에로티시즘의 절대적 순간에는 침묵이 있고, 사정은 ‘작은 죽음’이며 에로티시즘의 최고 경지를 죽음 또는 살해로 파악한 바타유의 ‘에로티즘’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다.
마치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지막 ‘이졸데의 죽음’이 무한 선율을 타고 강렬한 판타지를 안겨 주고, 가부키에 자주 등장하는 정사(情死)가 ‘사의 찬미’를 보여 주듯. 평생 에로티시즘을 연구해 온 바타유는 에로티시즘보다 노동 문제가 더욱 중요하고 절박하지만 노동 문제는 통제할 수 있고 에로티시즘은 통제권 밖에 있는 문제이며 모든 문제 중에서 에로티시즘은 가장 신비하고,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엉뚱하며 나머지 삶과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말한다.
1부 금기와 위반에서는 금기와 위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것이며 인간은 이 둘 사이에서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의 삶은 에로스의 삶을 제어하기 위해서 금기를 만들지만, 그 금기는 위반을 막을 수 없다. 불안한 존재인 인간은 노동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변하면서 에로스의 바다로 빠져들게 되며, 그렇게 해서 범하게 되는 위반에서 오는 쾌락이야말로 에로티시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노동만을 하고 있는 인간들의 내면에는 이 에로티시즘이 강렬하게 숨어 있고 이 단순한 생식과는 구별되는 풍요롭고 꽉 찬 삶인 에로티시즘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주는 중요한 차이점이며 동시에 에로티시즘의 순간보다 강렬한 것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 정신의 정상에 위치한다고 바타유는 주장한다.
2부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각론이다. 존재의 연속에 대한 향수는 육체, 심정, 신성의 에로티시즘으로 나타난다고 본 바타유는 결혼과 반복적 성행위, 에로티시즘과 신성의 관계, 천박한 매음과 에로티시즘의 관계를 비교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안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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