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지문]국민 생명보호는 국가의 기본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10분


미국 유학 시절에, 어떤 보통 시민이 범죄 조직에 의해 또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살해 기도의 표적이 됐기 때문에 ‘그에 대해 신변 보호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미국인들은 참 축복받은 국민이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언제 사사롭게 위험에 처한 민간인도 국가가 경호해 주는 선진국이 될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사이비종교를 연구하던 탁명환 교수가 살해됐다. 그분은 우리 학계에서 사각지대이던 사이비종교 연구가로서 사이비종교 단체의 살해 위협을 계속 받아 왔고 살해 기도를 몇 번 당하고서도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국 변을 당했다. 공익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가 살해 위협을 받는데도 정부에서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허용한 살인’이라고 생각됐다.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 씨의 경우도 이모 성혜림의 사망과 그의 모친의 망명 기도 이후 북한의 자객 파견은 100% 예견된 것이었다. 늘 위태로웠던 그는 모친의 망명 실패 이후 쫓기는 사냥감 같은 신세가 됐다. 그러나 정부가 그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대책을 세운다는 말은 없었고, 마침내 그가 살해됐을 때에도 우리 정부는 적극적이고 철저한 수사도 벌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며칠 전 납북자 가족으로서 납북자 귀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성용 씨에게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테러첩보설을 전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정부에서 그에 대한 철저한 신변보호조치를 해야 하는데 왜 그런 소식은 없는지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혹시, 국정원이 최 씨에게 테러첩보설을 전한 것은 그에게 납북자 귀환운동을 그만두라는 암시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테러첩보 통보를 한 후 거의 열흘이 지나서부터 경관을 2명 배치해 경호한다는데, 정부가 나서서 강력히 추진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민간단체 대표에게 너무 무성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정부는 최 씨가 위해를 입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으면 국민은 어디에 목숨을 의탁할 수 있으며 무엇에 충성을 바치겠는가. 현행법에도 민간인이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지만 효력이 미미한 듯하니 신체적 위협을 받는 민간인이 국가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할 수 있고, 국가는 확실한 보호 의무를 지니는 강력한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

정말이지 현 정권은 우리 국민에게 대한민국에 충성하기를 요구하기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충성하기를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서해교전 전사자에 대한 초라한 대우, 우리 해군에 북쪽 함대가 발사를 해도 대응사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 남파된 북한 첩자들은 북송하면서 우리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은 ‘감히(?)’ 거론조차 못하는 등 우리 집권세력은 권력을 누구에게서 위임 받았으며 누구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의 의무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혹이 너무나 자주 인다.

북한이 현대아산과의 관광사업 독점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개성관광의 미끼를 다른 관광업체에 던졌을 때 정부는 이를 방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애초에 현대가 북한과 사업을 시작할 때 북한은 계약을 어겨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북한과의 계약은 우리 정부가 보증한다는 암묵적인 양해하에 착수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의 배신을 질책하고 계약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지 않고 북한의 입맛대로 새 밥을 지어 바치려 했다. 북한의 미끼를 거부한 민간업체만도 못한 정부가 아닌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의 국체(國體)가 유지된 것을 ‘나쁜 역사’로 인식하는 대통령, 국가 재정을 탕진하면서라도 북한의 힘을 길러 주려는 정부, 민족의 학살자 김정일을 만나고서 감격과 환희를 온몸으로 표출했던 통일부 장관을 보면서 국민은 두렵고 서럽다. 대체 어떤 사태를 보아야 우리 정부의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말인가.

서지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영문학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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