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감싸는 개운한 바람과 푸른 하늘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실핏줄까지 스며들어 정말 초록으로 수혈을 받으며 가을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기 딱 좋은 이즈음입니다. 이렇듯 안솔기의 숲엔 가을주의보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지난여름엔 땀깨나 흘렸습니다. 문을 연 지 5년이 된 ‘호텔 꼬꼬’(경남 산청군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아이들은 우리 닭장을 그렇게 부릅니다)를 옮겨야 하는 공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 한 달간의 공사 끝에 이제 ‘호텔 꼬꼬’는 간디학교 근처로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규모를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을 벗어 던지고 일에 치이지 않을 정도의 크기인 닭장을 그대로 뜯어서 옮긴 것입니다. 간디학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모든 생명들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고 또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터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맨 먼저 우리 닭들에게 줄 풀을 벱니다. 우리 닭들의 훌륭한 영양식이 되는 풀을 베고는 내일을 위해 낫을 갈아 놓습니다. 무디어진 날을 세우기 위해 숫돌에 낫을 쓱쓱 갈면서 제 마음도 함께 다듬습니다. 마음의 날이 서지 않도록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의 힘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연약한 풀들의 힘에 그 단단한 낫도 일 년이면 다 닳아 버립니다.
그렇게 낫을 갈아 놓고 나면 둔철산 자락 숲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그때마다 만나는 들짐승이나 벌레 그리고 풀, 나무, 돌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숲의 주인들이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일 때가 없습니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5년이 지난 이제야 겨우 그 숲의 주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려면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과 말문을 트고 또 마음을 나누기 위해선 나 자신이 숲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할 텐데 숲의 주인들이 허락이나 해 줄는지…. 그때까지 끊임없이 초록으로 수혈을 받을 수밖에요. 그리곤 이 어울림의 숲을 나 혼자만 만끽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도록 숲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계속 해 볼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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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현 농부·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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