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보름 동안 시민모임 앞으로 성금을 보낸 국민은 5만여 명. 액수는 9억 원을 넘었다. 1000원을 낸 초등학생부터 1억 원을 보낸 기업가까지 각계각층이었다.
상주지청과 상주지원 등 관공서에서 근무했던 사람들과 상주가 고향인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이 지역 출신 인사도 참여했다.
3일 사고가 발생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잡음 없이 참사의 상처를 치유한 데는 80여 명이 만든 시민모임이 큰 역할을 했다.
대형 사고를 겪은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주민끼리의 혼란, 책임 소재와 보상을 둘러싼 민관 갈등을 막고 지역사회를 추슬렀기 때문이다.
20일 상주시 문화회관 1층에서 만난 시민모임의 김량(金亮·51·정형외과 전문의) 위원장은 “유족을 위로하고 구겨진 상주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아 마음 편하다”며 “전국에서 함께 걱정해 주고 격려해 준 국민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소식을 듣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제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몇몇 지인을 만나 우선 유족을 위한 모임부터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유족이 흔들리면 안 되니까요. 시민의 마음을 모으는 뜻에서 모금도 시작했고요.”
이번 사고는 시청과 MBC, 경찰이 관련돼 차분하게 수습하지 못할 경우 인구 12만의 지역사회가 큰 혼란에 빠질지 모른다고 김 위원장은 걱정했다. 그래서 시민모임은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대형사고처럼 보상 문제로 장례식을 제날 치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모두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장례만큼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를 갖춰 제때 치르자고 유족들이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에 감명을 받아 많은 시민이 성금을 보내거나 문상을 하면서 위로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상주가 참사의 아픔을 빨리 딛고 일어서기를 바란다며 위로를 보냈다.
“존애원(存愛院) 정신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살아난 느낌입니다. 개인을 중시하는 세상이지만 서로 돕는 마음이 없다면 결국 개인이 설 자리도 없지 않을까 싶고요. 사고를 겪었지만 전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시민 모두에게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존애원은 임진왜란 직후 질병에 시달리던 주민을 치료하기 위해 상주지역 13개 문중의 학자들이 1602년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원.
‘경상도’ 지명의 한 글자를 차지하는 상주는 면적이 서울시의 2배. 조선시대에 상주목(尙州牧)이 설치됐을 정도로 경상도 북부의 중심 지방이었다. 평지가 많고 비옥해 쌀농사와 함께 곶감과 누에농사로 넉넉한 삶을 꾸려 왔다.
낙동강 중심에 있는 경천대를 비롯해 속리산 문장대 등 빼어난 자연에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상주의 자존심이다.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항거했던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 선생도 상주 출신.
“누구나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겠지만 상주의 역사적 문화적 자존심은 이 지역의 버팀목입니다. 그동안 개발에서 비켜났지만 대신 청정함이 살아 있어요.”
그는 사고 이후 오전에만 진료하고 오후부터는 시민모임 일로 밤늦게까지 뛰어다녔다. 시민모임은 26일경 해단할 예정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환자만 치료하는 게 의사의 전부가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일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죠. 상주가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인정 많은 고장이라는 점이 전국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상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김량 대표는
△1954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 동성고, 가톨릭대 의과대학 졸업
△1988∼1990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전임강사
△1990∼1993년 상주성모병원 진료부장
△1994년∼현재 상주가톨릭정형외과 원장
△상주포럼 부회장, 범죄예방위원 상주지구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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