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들 좋아하시는데 이제 우리 박물관도 진정으로 열린 박물관이 되어야 합니다.”
새 중앙박물관 개관은 1993년 건립 계획 수립에서 이날 문을 열기까지 12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2003년 관장에 취임해 개관 준비 마무리 작업을 진두지휘한 이 관장이 개관식 직후 밝힌 첫 소회는 국민에 대한 감사였다.
“유물을 이전하느라 1년 동안 박물관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이 1년 동안이나 문을 닫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그 불편을 참아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관장에게 지난 몇 개월은 매일매일이 숨가쁜 시간들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박물관 정원 쪽에 있던 미군 헬기장의 이전 문제였습니다. 7, 8년째 난항을 겪어 온 헬기장 이전 협상이 올해 4월까지도 타결이 되지 않는 거예요. 그때는 아침에 눈만 뜨면 헬기장 걱정이었죠. ‘이러다가 10월 28일 개관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5월 초 이전 결정이 나면서 정말 한시름 놓았습니다.”
경복궁에 있던 옛 중앙박물관(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의 유물을 용산으로 옮기는 것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15만여 점의 유물을 일일이 포장해 안전하게 옮긴다는 것은 박물관 사람들에게 있어서 속된 말로 ‘피 말리는’ 일. 이동 과정에서 사고가 생겨도 사람은 다칠지언정 유물은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 제1 수칙이다.
“야외에 있는 대형 석조물을 옮기는 것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하나하나 다 해체해서 중장비를 이용해 옮긴 뒤 다시 조립해 복원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유물이 훼손될 우려도 있지요.”
그래서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부도·11세기)은 경복궁에 그대로 남겨둬야 했다. 1950년 6·25전쟁 때 산산조각난 걸 다시 접착한 것이어서 해체할 경우 재조립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관장은 한국 국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두계 이병도(斗溪 李丙燾) 선생의 손자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박물관에 들어간 그는 청동기 시대 전문가로 전국의 숱한 발굴장을 누빈 베테랑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유물은 무엇일까. 이 관장의 대답은 조심스러웠다.
“문화재에 우열이 어디 있으며 또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골라 보라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과 신라 금관입니다. 신비로운 사유의 세계를 보여 주는 반가사유상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 명품이죠. 금관도 각별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10여 점에 불과한 금관 가운데 우리나라에 8점이 있으니 말이죠. 특히 신라 금관은 허리띠와 함께 출토됐는데 이렇게 세트로 발굴된 것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이 두 문화재는 모두 독립된 공간에 전시했습니다. 예우를 갖추자는 것이죠.”
이 관장은 앞으로의 박물관 운영 방향에 대해 “국민에게 열려 있고, 아시아에 열려 있고, 세계에 열려 있는 박물관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민 여러분께 자주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만1000여 점의 유물을 한꺼번에 다 볼 수는 없으니까요. 어린이부터 청소년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층에 맞는 관람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평생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주 와서 조금씩 보세요. 좋은 공연장도 있고 전시실 밖 정원도 훌륭합니다. 유물을 보셔도 좋고 멋진 건물 구경만 하고 가셔도 괜찮고, 그냥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셔도 좋을 겁니다.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도서관을 마음껏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참, 박물관 정원엔 거울못이라는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할 겁니다. 잊지 마세요.”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와 역사의 전당이 될 새 국립중앙박물관. 이 관장의 말대로 열린 문화공간으로 21세기 한국 민족문화의 전당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이건무 관장은
△1969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2002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2003년∼현재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
△주요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유적, 충남 부여군 송국리 청동기유적 등
△논문 및 저서: ‘한국식 동검(銅劍)문화의 연구’ ‘청동기 문화’ ‘선사 유물과 유적’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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