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동민 씨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독주회를 마치고 5일 귀국했고, 동생 동혁 씨는 그보다 일주일 앞서 귀국했다. 두 사람은 10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쉴 예정이다.
○ 두 형제의 솔직 토크
10여 년을 러시아와 독일에서 함께 공부해 온 이들 형제는 성격도, 연주 스타일도 판이하다. 형은 내성적이고 진지한 데 반해 동생은 솔직하고 당찬 스타 기질을 가졌다. 동혁 씨는 “내 좌우명은 ‘겸손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알자’이다. 내 장점에는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고 단점도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뜻이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도 형은 짤막한 단문형으로 대답했고 동생은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열세 살에 한국을 떠나서 이곳에는 친구가 1명도 없다. 친구를 좀 사귀고 싶다. 여행도 거의 가지 못했다. 유럽이든 동남아든 국내든 혼자서 여행을 해보고 싶다.”(동민 씨)
“요즘 하루 3시간씩 운전학원에 다니고 있다. 또래들이 흔히 그렇듯 차에 관심이 많다. 자동차 잡지를 보면서 차의 성능, 가격, 메커니즘을 즐겨 찾아 본다. 언젠가 BMW 5시리즈를 사서 달려보고 싶다. 아마도 내 성격이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것 같다.”(동혁 씨)
―서로의 연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동혁이의 연주는 화려한 테크닉과 카리스마가 돋보인다.”(동민 씨)
“형의 연주는 충실하고 진지하며 노력형이다. 반면 나는 즉흥적이고 반짝이는 재능형이다. 문제는 재능형의 경우 젊은 나이에 반짝했다가 사라져 버린 연주자가 많다는 점이다.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 반면 형은 꾸준히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 같다.”(동혁 씨)
○ 형제는 용감했다
동민 동혁 씨 형제는 ‘부잣집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머니 박현옥(50) 씨의 말에 따르면 부모는 피아노의 ‘피’자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형은 10세, 동생은 7세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이들 형제는 1994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모스크바지사장으로 발령받은 아버지 임홍택 씨를 따라 모스크바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임 씨는 “두 아들을 피아니스트로 키우는 것이 봉급생활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삼성문화재단에서 재정적으로 큰 후원을 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동혁 씨가 세계적인 음반사인 EMI와 전속 계약을 하고 음반을 2장이나 내면서 세계 각국으로 연주를 다녔던 데 비해 동민 씨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 그래서인지 ‘피아노의 에베레스트’로 불리는 이번 콩쿠르에서 이들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에 입상한 데 대해 아쉬움도 컸겠지만 어머니 박 씨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기 전 동민이가 오전 4시에 엄마 아빠에게 와서 콩쿠르에 안 가겠다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어요. 마음에 부담이 컸던 거죠. 하지만 형제가 서로 돕고 격려하더군요. 동혁이는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연주복도 갈아입지 않고 형의 연습실로 달려와 함께 들어주곤 했어요. 형제가 서로 도와 끝까지 완주한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둘의 성적이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똑같았다는데, 모두 하늘의 뜻이지요.”
형제는 이제 부모 곁을 떠나 각자 미국이나 유럽에서 독립적 삶을 꿈꾸고 있다.
“연주자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요.”(동민 씨)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연습할 줄 알아야 음악적으로 진정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해요.”(동혁 씨)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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