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해 “우리 헌법에 분명히 자유민주주의라고 돼 있는데 그것마저 흔드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는 이데올로기 갈등에 시달리는 정권”이라며 “현 정권이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하기 이전에 굉장히 마음이 착잡하고 딱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김 교수의 자택을 찾아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심경을 들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한 데 대해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에 대한 내 생각은 민주적 절차에 의거해 뽑은 ‘우리 대통령’이기 때문에 나무라기보다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다들 마치 남의 대통령인 것처럼 말하는 풍토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지나쳐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는 것에 대해 양쪽의 책임을 모두 돌아보자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역대 정권 중 지금처럼 사방에서 공격받은 정권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도 화가 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렇지만 현명한 지도자는 말은 적게 하고 귀는 크게 열어 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과 총리 같은 분들은 나라의 어른이고 권력을 쥔 강자인 만큼 너그럽고 여유 있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원로들이 바른말을 하면 화부터 내지 말고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이 정도(正道)를 걷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항상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 대통령이 헌법을 존중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헌법을 지켜야 합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지만 당시에도 대통령이 헌법을 경시한다는 지적을 받지 않았습니까. 또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의 발언은 결국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이었는데 정부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약간 옹호하는 것같이 나서는 바람에 오해를 산 것입니다. 개헌 논의가 있는데 이 역시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추진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됩니다.”
그는 10일 토론회에서 “(현 정부 인사들은) 나이나 세상 경력으로는 ‘아기들’”이라며 “나무라기보다는 같이 갈 사람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표현을 쓴 데 대해 김 교수는 “현 정부 인사들이 정책 수행에 있어 경험이 부족하며 특히 외교정책에서 노련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는 과정에서 나이 먹은 사람의 입버릇이 섞여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발행하는 계간 ‘철학과 현실’ 가을호에는 김용준(金容駿) 고려대 명예교수가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 등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회고하면서 현재 진행되는 과거사 청산작업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지적한 글이 실렸다.
김 교수는 “김용준 교수처럼 양심적인 지식인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고백이었는데 친여권 인사들이 이를 폄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역사적 평가는 역사가들에게 맡기고 정부는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진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택시를 타 보면 택시운전사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습니다. 택시운전사들은 현 정부를 지지한 서민층인데 그분들까지도 저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뭔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후세에 역사가가 평가해 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에 과거사 청산 같은 추상적 일에 자꾸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후세의 평가가 당대의 평가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국민이 윤기 있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태길 학술원 회장은
△1920년 충북 충주 출생
△1945년 도쿄(東京)대 법학부 중퇴, 서울대 철학과 편입
△1949년 서울대 철학석사
△1960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철학박사
△1962∼86년 서울대 교수
△1987년∼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2001년∼현재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상임공동대표
△2004년∼현재 학술원 제30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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