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설 ‘주홍글씨’는 식민지 시절 청교도 사회에서 일어난 간통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요즘 같으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헤스터는 이 같은 형을 선고받지 않았을 것이다.
간통죄는 이혼소송을 전제로 상대방의 고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 파탄을 예방하기는커녕 협박이나 위자료 청구 수단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굳이 법으로 단죄할 필요가 없다는 게 요즘 분위기다.
정기국회에 올라간 간통죄 폐지 법안을 두고 여성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프라이버시에 국가권력인 형벌권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외도를 자제시켜 가족생활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간통죄 존폐에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저출산 문제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불과 한 세대 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정부의 강력한 산아제한 시책에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부응했다. 적게 낳아야 그만큼 자유롭게 밖에 나가 일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시대가 변해 정부는 ‘둘은 낳자’고 요구한다.
군 가산점 폐지 논란이 일자 남성들의 ‘국방의 의무’에 맞서 여성들은 ‘우리는 애 낳는다’며 ‘출산의 의무’를 들고 나온 적이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를 당장 구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출산은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라며 다른 주장이다.
미국여성유권자연맹은 1920년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하자 이들에게 투표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설립됐다.
얼마 전 방한한 이 단체의 케이 맥스웰 회장은 “투표하는 방법을 모르는 여성은 이제 없다. 우리 단체는 남녀 유권자 모두에게 정치 참여를 권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여성단체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뉘앙스였다.
여성들의 삶이 덜 팍팍해지면 여성단체들이 설립 목적을 떠나 다른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여성민우회가 생태운동단체로, 가정법률상담소는 법률구조단체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여성단체는 이제까지 여성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호주제 폐지를 외치던 일치된 목소리는 이제 더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둘씩 들려오는 다채로운 목소리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이참에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보통 여성들의 목소리가 섞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집안 살림에서 내공을 키워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할 준비가 된 보통 여성들도 적지 않다.
여론을 끌고 가는 명망가들의 높은 목소리와 장바구니 물가나 수험생 자녀의 성적에 가슴 졸이는 우리네 여성들의 낮은 목소리가 어우러졌으면 하는 것이다.
여성계가 사회현실보다 너무 앞서 간다는 세간의 우려를 씻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소리 높인 목소리가 아니라 조화로운 목소리다.
김진경 교육생활부 차장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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