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울산 소방관 4형제 강만호-윤호-인호-석종 씨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2분


강만호 씨의 권유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한 윤호, 석종, 인호 씨(오른쪽부터). 만호 씨는 현장에서 돌아왔을 때 화재 소식을 들은 부모가 안부 전화를 걸어오면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출동하지 않았다며 안심시킨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자긍심을 갖지만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인지 자식에게는 이 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강만호 씨의 권유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한 윤호, 석종, 인호 씨(오른쪽부터). 만호 씨는 현장에서 돌아왔을 때 화재 소식을 들은 부모가 안부 전화를 걸어오면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출동하지 않았다며 안심시킨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자긍심을 갖지만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인지 자식에게는 이 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울산에서 큰불이 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반드시 몇 분 뒤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옵니다. 그럴 때는 막 진화 작업을 끝내고 돌아와 땀을 닦으면서도 출동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해서 안심시켜 드리지요.”

“2003년 10월 울산석유화학공단 내 SK공장에서 가스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4시간 동안 진화 작업을 벌였습니다. 배관에서 가스가 자꾸 새고 불길이 계속 번지면서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동생들도 이렇게 위험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울산남부소방서 공단파출소에 근무하는 강만호(姜萬鎬·37) 씨는 인터뷰를 위해 15일 오전 울산 남구 삼산동 울산시소방본부 소회의실에서 동생들을 만났을 때 한편으론 반가워하면서 한편으론 미안한 표정이었다.

네 형제 중 윤호(閏鎬·33) 인호(仁鎬·28) 씨와 6촌인 석종(錫鍾·33) 씨에게 소방관의 길을 걷도록 권유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둘째인 일호(一鎬·35) 씨는 개인 사업을 한다.

만호 씨는 지난달 13일 경북 칠곡군의 지하 가요주점에서 진화 작업 중이던 동료 소방관 2명이 순직한 뒤 동생들이 근무하는 지역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인다고 털어놓았다.

SK공장의 화재사고 뒤 만호 씨는 난생처음으로 생명보험에 들었다. 동생들에게도 보험에 가입하도록 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마(火魔)와의 싸움’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그럴수록 동생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고 그는 말했다.

이들은 울산에서 같은 소방관 생활을 하지만 근무지가 다르다 보니 형제 4명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고 입을 모았다.

1996년 9월 소방관이 된 만호 씨는 남에게 좋은 일 하면서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에서 동생들에게 소방관이 되라고 권유했다.

경북 경산시에서 섬유회사에 다니던 셋째 윤호 씨는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에 놓이자 진로를 고민했다.

마침 경산소방서에 근무하면서 함께 자취를 하던 만호 씨가 소방관 시험에 필요한 책을 사 줘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군에서 제대한 막내 인호 씨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윤호, 인호 씨는 2002년 9월 울산시소방본부의 소방관 시험에 함께 합격했다. 나이는 다섯 살 터울이지만 소방관으론 동기인 셈이다. 큰형 만호 씨는 2002년 5월 결혼과 함께 부인의 근무지를 따라 울산으로 옮겼다.

가스설비 업체에 근무하던 석종 씨는 회사 기계실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화 장비가 없어 피해가 커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한길을 가는 6촌 형제들의 얘기를 듣고 2003년 8월 역시 소방관이 됐다.

이들은 비상근무 때문에 명절 때는 거의 고향을 찾지 못한다. 집안 대소사는 모두 둘째인 일호 씨 몫이다.

경북 영양군 청기면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는 윤호, 인호 씨에게 하루라도 빨리 장가를 가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그럴 때마다 형제는 “너무 바빠 연애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지난해부터 할머니(94)가 병석에 누워 계시지만 격일제 근무에다 긴급 출동이 잦아 찾아뵙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할머니가 빨리 원기를 회복하시기만 기원할 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고 위험 부담이 어느 직종보다 커서 생명과 재산이 위기에 처한 국민을 직접 구한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이들은 “자식들이 소방관이 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 및 책임감과는 별도로 소방관 생활의 어려움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강조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난 뒤 소방관 형제는 “오랜만에 점심이나 함께 먹자”며 회의실에서 일어났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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