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31>소피의 세계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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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설은 재미있고 철학은 재미없다. 철학은 설명이고 소설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설명은 왜 재미없고 이야기는 왜 재밌을까? 설명은 사태를 개념의 매개를 통해 서술하는 2차 언어이고, 이야기는 사태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1차 언어이기 때문이다. 1차 언어는 왜 재밌을까? 그 언어는 삶의 표면적인 진행을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사태의 구체적인 진행에 쉽게 동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인간의 삶은 1차적인 이야기이지 2차적인 설명이 아니어서 삶은 소설에 가깝지 철학에 가깝지 않다.

일반인이 철학에 접근하기 껄끄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의 2차 언어는 개념의 여과를 거치기 때문에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흥미와 감동을 유발하지 않는다. 철학적인 저술들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하여 철학의 설명에 소설적 이야기를 가미하여 성공한 최초의 작품이 곧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다.

그리스 고대 자연 철학에서 프랑스의 실존주의에 이르는 방대한 서양 철학의 역사를 저자는 15세 소녀 소피 아문젠과 50대 초반의 철학 선생 알베르토 크녹스의 대화로 풀어간다. 크녹스 선생은 소피에게 각각의 철학의 특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소피가 주변에서 쉽게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사실들을 끌어들인다. 이를테면 플라톤 철학은 ‘숨바꼭질’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스무고개’에,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철학은 ‘레고’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간의 성향을 자기 집 고양이나 젖먹이 사촌동생에 견주어 설명하기도 한다. 일상의 경험적 사실을 철학적 설명에 끌어들이는 일 못지않게 ‘소피의 세계’는 별도의 학습이 없이도 이성적으로 사유하기만 하면 철학적 사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자기와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 잘 생각하기’라는 철학의 본래적인 입지를 확립한다. 그래서 기억과 암기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스스로 사유능력을 계발하여 무리 없이 다양한 철학의 내용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소피의 세계’는 요즘 출판계에 성행하는 요약적이고 표피적인 여타의 철학입문서와 동급으로 취급할 수 없다. 저자는 특히 철학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각각의 철학이 출현한 역사문화적 맥락을 살피며, 철학적 사유가 인간 삶의 문제와 얼마나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자기와 세계를 낯설게 보아 질문하게 하고, 역사문화적 상황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게 하며, 어느 개인도 철학의 물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추리소설의 알레고리 기법을 활용하여 서술한다.

소피와 크녹스 선생 그리고 힐데와 크낙 소령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는 단순히 철학적 설명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철학적 물음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독자는 철학 내용을 추적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저자가 제시하는 수수께끼 같은 스토리 전개 속에서 마치 퍼즐을 풀듯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저자가 말하는 ‘마법사가 모자에서 꺼낸 흰 토끼의 가죽 아래에서 우글거리는 벌레’에서 벗어나 ‘마법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흰 토끼 가죽의 가느다란 털을 붙잡고 한사코 위로 기어오르는 철학자’가 된다.

유헌식 철학박사 텍스트해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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