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비유하자면 경제는 마라톤이나 골프의 승부 방식에 더 가깝다. 경제는 기업이나 개인이 최선을 다해 경쟁에서 이길 때 생존하고 발전하는 게임이다. 성공의 규모는 다르더라도 모든 기업이 다 잘될 수도 있는 것이며, 반드시 다른 기업을 망하게 해야 내 회사가 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시장경쟁을 축구나 테니스식 승부처럼 여겨, 남이 망하고 손해 봐야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그런 성향은 외국 기업이나 외국 자본에 대해 특히 강하다. 외국 자본은 한국 시장에서 실수를 해서라도 돈을 잃고 나가야 하며 우리의 허술한 제도 때문에라도 저들이 돈을 버는 것은 좀체로 용납되기 어렵다. 11월 12일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서울을 다녀온 한 기자의 칼럼을 통해 이 같은 한국 내 반외국 정서를 신랄하게, 그러나 비교적 정확하게 지적했다. 외국 투자가를 거머리로 묘사한 한국 언론의 공격적 논조를 꼬집고, “이런 반외세 정서가 외국 투자가들에게 불쾌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그의 쓴소리는 우리가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하기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 자본들이 제법 큰돈을 벌어 가기도 했다. 일부 탈법적 행태가 적발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법 행위가 국내 기업들의 그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데도 여론은 외국 기업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 만난 한 외국 기업 관계자는 “법을 지키는 데 있어 외국 자본은 한국 기업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한국 내 최고 로펌에 의해 완벽하게 적법하다고 판단돼야 투자한다”며 외국 기업에 가혹한 우리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외자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중국은 이데올로기까지 바꾸면서 외자 유치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고, 미국은 주지사들이 마치 ‘호객 행위’ 하듯 외국 기업 유치에 열성이다. 물론 우리도 외국 자본이나 기업의 투자는 환영한다 - 들어오되 돈 벌어 가지는 말라는 염원과 함께…. 예를 들어 라스베이거스 도박장들이 고객 끌어들이기 경쟁에 열을 올리는 데 그중 한 업소만 유난히 출입 절차나 게임 규정을 까다롭게 해 놓고, 손님이 큰돈을 딸 때마다 애사심 불타는 종업원들이 몰려들어 분노에 찬 욕설이나 해댄다면 그 업체는 번창할 리 없다. 우리 기업은 밖에 나가 돈을 벌 수 있어도 외국 기업은 한국에서 돈 벌면 안 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이곳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때 외자는 더 많이 들어오는 법이다.
최근 황우석 교수 문제에서도 그의 학문적 성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정작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한 것은 의혹 자체보다 이를 보도한 방송이나 비판성 글에 대한 누리꾼들의 격렬한 반응이었는데 여기에도 특정 국가에 대한 반감과 배타성은 존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에 대한 관용을 누리꾼들에게 요구했지만 그 말은 바로 국민이 그동안 노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판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은 바로 이 정권의 배타성이 만든 작품이 아닌가.
정치권에 등장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성향은 우리의 잠재된 배외 기질을 증폭시켜 반외세 정서를 확산시킨 측면이 강하다. 배외주의 국수주의는 애국적으로 보이고 군중의 지지를 받기도 쉽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애국자들’이 하고 있는 일은 결과적으로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길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여 국가적 손실을 끼치는 것뿐이다.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만 ‘참여’한 정부라는 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선 정권부터 배타성을 버리고 이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치료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규민 경제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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