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역사는 수많은 암기사항으로 채워진 무거운 과목이 되기 쉽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기만 한가? 다르게 보면 역사는 가볍고 평범하기도 하다. 역사가 영웅호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본다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소설보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만큼 역사도 그럴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먹고, 입고, 놀고, 사랑하고,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일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법과 제도 속에서 그것을 지키며 때로는 이를 어겨 벌을 받으며, 온갖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공부하고, 생각하고, 생각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
그 사람들이란 위로는 왕부터 양반, 중인, 상민, 맨 아래로 노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분 계층이 있었으며, 하는 일로 보면 관원, 농민, 상인, 장인, 군인, 역관, 화원, 승려 등 다양한 직역의 사람들을 포함하였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온갖 단면을 이야기하자면 얼마나 두껍고 무거운 책이면 되겠는가?
중견 소장 한국사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만든 이 책은 이러한 과제에 도전하여 나온 산물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46개의 꼭지로 선정하였다.
우선 나름대로 46개를 선정하였으나, 호사가들이 하듯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는 가벼운 관심거리만을 뽑지는 않았다. 전공자로서 조선시대를 보는 깊은 관심과 관점을 바탕으로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제를 선정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현재 글을 써낼 수 있을 만큼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주제로 한정하였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43명 동원하였다. 한참 활발히 연구하는 소장 중견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점, 그리하여 함부로 튀지 않고 믿을 만하다는 점,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의 글을 보면 10∼12쪽으로 분량이 비슷하며, 문장의 호흡도 대체로 같은 흐름이다. 단순히 글을 모은 게 아니라 짜임새 있게 기획하고 글을 모은 뒤에는 여럿이 손때를 묻혀 가며 다듬은 결과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두 장을 넘지 않고 등장하는 컬러 도판들과 거기 붙어 있는 설명문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적실하다. 그래서 이 책은 전공자들이 쓴 역사책 치고는 비교적 가벼운 편이며, 읽힌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겠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룰 때 한계는 남는 법. 이 책만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이 책은 그런 세계로 들어서게 해주는 안내서로서 자리 잡으면 족할 것이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 궁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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