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46>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입력 2005년 12월 10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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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이 신(神)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시절에 과거나 현재로부터 미래를 ‘귀신’처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는 뉴턴의 기계론적 자연법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현실적으로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세계관은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물리학자들에게 남겨진 일은 ‘정확한 계산’뿐이라는 주장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태생의 벨기에 화학자가 비평형 상태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했던 1950년대부터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 뜻 없는 잡음이라고 여기던 ‘요동(搖動)’이 평형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뜻밖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 비평형 상태의 미래는 ‘확률’을 이용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굳게 믿어 왔던 확실성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책이 설명하려는 ‘확률’과 ‘혼돈(카오스)’을 중심으로 하는 ‘복잡성의 과학’의 핵심이다.

1972년생으로 27세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예일대 박사후과정을 거쳐 현재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물리학 최신 이론을 바탕에 깔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하나의 콘서트처럼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사회 경제 문화 역사 등 전혀 별개의 분야로 생각되는 사회현상들이 사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지극히 과학적인 개념으로 보이지만 사실 확률만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확률을 이용해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엉터리 상식이 판을 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바닷가의 해안선 모양,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을 담은 추상화, 온통 헝클어진 뒤웅박처럼 보이는 서태지의 머리, 바흐나 비틀스의 음악, 우리의 일상 언어, 심장의 박동에 이르는 정말 다양한 현상들이 모두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눈높이를 바꾸면 세상은 달라진다. 겉으로는 지극히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상 속에 지극히 놀라운 논리와 규칙이 숨겨져 있다. ‘프랙탈(분차원·分次元)’이라는 새로운 수학적 도구가 필요하다.

규칙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백화점의 주차장, 아무런 이유 없이 막힘과 풀림이 반복되는 고속도로, 오히려 라디오 잡음에 가까울 정도로 변덕스러운 주식 시장에도 질서가 담겨 있다. 프랙탈이라는 새로운 안경으로 보는 세상은 상상을 넘어선다. 아무런 예측이나 추측이 불가능한 ‘혼란’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정교한 분석이 가능한 ‘혼돈’이 그런 현상들의 놀라운 공통점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대해 전혀 새로운 해석과 분석의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확률과 프랙탈로 해석할 수 있는 혼돈의 세상에 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현재로는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일을 밝혀낼 신의 능력이 있는지는 복잡성의 과학이 완성된 후에 드러날 새로운 도전을 만나 보아야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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