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50·끝>당신들의 천국

  • 입력 2005년 12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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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자선냄비와 함께 사랑을 호소하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그 종소리에 호응하는 크고 작은 손들을 보면서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은 말한다. 그대 행복을 원하는가? 그러면 사랑하라!

얼마 전 이 땅에서 가장 행복했을 수녀 두 분의 귀향 소식을 들었다. 40여 년 전 이 땅을 찾아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와 더불어 사랑의 삶을 살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71) 수녀와 마가레트(70) 수녀가 그분들이다. 가족보다 더한 가족애로 한센병 환자와 함께했던 그분들은, 지난 삶에 감사하며 조용히 이 땅을 떠났다고 한다. 사랑의 벼리를 조용히 확인해 준 사건이다. 그분들이 지녔던 것은 권력도 자본도 명예도 아니었다. 오로지 가장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가장 낮은 곳에서, 운명을 같이하면서 꿈꾸는 ‘우리들의 천국’에의 소망 하나였을 것이다.

작가 이청준의 소망 역시 그랬다. 그의 ‘당신들의 천국’(1976년)은 소록도를 무대로 한센병 환우들과 병원장의 갈등을 중심으로 천국에 이르는 길의 어려움을 고뇌한 소설이다. 조백헌 원장은 선한 의지로 나환자들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을 구상하고 실천하려 한다. 그러나 환우들은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에 의한 ‘당신들의 천국’에 회의하며 협력하지 않는다. 환우들은 자유 의지와 사랑의 교감에 기초한 실천적 힘, 위나 밖으로부터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자생적 의지나 운명에 기초한 ‘우리들의 천국’을 소망했던 것이다.

“운명을 같이하지 않는 한에서의 어떤 힘의 질서는 무서운 힘의 우상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조 원장은 조용히 섬을 떠난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모색하고자 한 조원장의 반성적 이념과 노력은 더 는 구체적인 결실을 보지 못한다. 다만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 추진 사건을 통해 ‘우리들의 천국’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사랑과 자유에 기초한 이 결혼이 암시하는 것은 일반의사에 입각한 공동의 행복 추구 가능성이다. 환자와 일반인, 우리와 당신들이 구별되는 천국이 아닌, 서로 교감하고 조화를 이루는 ‘우리들의 천국’의 씨앗이 거기서 자생적으로 움트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요컨대 타자와 구체적인 교감이 없던 주체의 선한 의지가 타자의 발견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테제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쳐 본 소설이 곧 ‘당신들의 천국’이다. 거기에는 삶의 현실과 이상적 소망, 주체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교감 가능성, 개인의 진실과 집단의 꿈의 화해 가능성, 자유와 사랑의 허심탄회한 조화 가능성 등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이 집필될 때도, 그 이후에도 두 수녀는 줄곧 소록도에 살았다. 어쩌면 작가 이청준이 미처 끝내지 못한 소설의 완결편을 그분들이 감당하려 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분들은 떠났지만 그냥 떠난 게 아니다. 그분들이 실천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천국’에의 소망, 곧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완결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열아홉의 젊은 그대, 행복을 꿈꾸는가? 그러면 사랑하라!

우찬제 서강대 교수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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