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었던 배가 복원될 때는 그대로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쏠리기를 몇 번 하다가 차츰 그 각도를 좁히면서 중심을 잡는다. 과거의 쏠림 현상에 대한 반동의 사례는 가정 내 사소한 일부터 국가적 큰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은 구박 받는 며느리 얘기지만 요즘 시어머니들은 경로당에 모여 사나운 며느리 눈치나 보며 살아가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 어려워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른들이 집 안팎에서 아이들 비위를 맞춰 가며 살아가는 험하고 한심한 세상이 되었다.
1970년대 산업화 초기 시절 공단 근로자들의 비참하고 열악했던 처지는 문학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경영진의 상전 노릇 하는 노조 간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더 현실감을 줄 만큼 노사관계는 역전됐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리 경제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을 정도로 세상은 바뀐 것이다. 언론도 그렇다. 과거 독자나 시청자를 계도하고 여론을 주도했던 언론은 이제 대중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 아부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전해야 할 사실과 대중이 믿고 싶은 내용이 다를 때, 최근의 ‘황우석 사태’ 보도에서 보듯이 언론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교육계는 어떤가. 얼마 전 서울대 총장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학교에 나오는 교수들이 있을 정도로 해이된 기강을 언론이 때려 달라”고 딱한 부탁을 했다. 대학 총장의 학내 권위가 막강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대학에 교수가 300명이면 총장은 299명(부총장 한 명을 뺀 전원)’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다. 총장실은 교수와 학생들의 농성장이 됐는데 총장실 점거의 시조이자 단골 주역이던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은 사립학교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런 못된 분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과거와 반대로 가려는 사회적 반작용은 마침내 참여정부를 탄생시키고야 말았다. 색다른 정부의 출현은 어쩌면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 한번쯤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권 출범 이후 나타나고 있는 반과거사적 현상들은 그 정도가 지나쳐 과연 이 나라가 제자리로 복원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했다. 과거 지식인들이 과장된 반공구호에 진저리를 냈지만 이제는 난데없는 친공 분위기에 당혹해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살아서 빨치산이 죽어서 애국지사로 둔갑하는 이 시대에 친공의 주역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못 견딜 일이다.
북한인권을 비판한 주한 미 대사의 발언을 현직 각료가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정부에 국민은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지도자의 영도 아래’ 남의 나라 지폐나 위조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동족으로서 말리기는커녕 역성까지 들고 나서는 판이니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지나친 반공이 시대 흐름에 안 맞고, 또 맹목적인 친미주의가 바뀌어야 할 시대 유산이라고 해도 지금 정부 주도로 벌어지고 있는 좌편향 운동들은 우리 사회의 나침반을 마비시키고 있다.
과거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던 것도 잘못이지만 지금 그 반대쪽으로의 경도가 이토록 심하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과연 복원될 수 있을까. 좌우 요동의 진폭이 너무 크면 배는 전복한다. 배가 기운 쪽으로 사람이 몰리면 뒤집히게 마련인데 다행인 것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더 많은 사람이 국가의 복원력이 작용하는 쪽, 즉 정권과 반대편에 섰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 국민이 평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호(號)’는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격랑의 한 해를 보내며 새해에는 이 나라 복원의 희망을 가져 본다.
이규민 경제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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