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전혁]水乘火降의 새해를 기대하며

  • 입력 2005년 12월 28일 03시 01분


매년 이맘때만 되면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 작년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 패거리를 지어 다른 자들을 공격한다)’에 이어 올해에는 ‘상화하택(上火下澤·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 선정됐다. 주역의 63괘 중 하나인 이 단어는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하여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외에도 사회 지도층의 위선을 비꼰 양두구육(羊頭狗肉),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막말의 성찬(?)을 빗댄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 상대의 허물 찾기에 혈안인 세태를 반영한 취모멱자(吹毛覓疵·피부 털까지 뒤져 흠집을 찾는다), 그리고 요란한 개혁 구호에 비해 성과는 없었음을 꼬집는 노이무공(勞而無功·헛심만 쓰고 얻는 것이 없다) 등도 순위에 들었다.

돌이켜 보면 교수신문의 이 사자성어들은 올 한 해 여권(與圈)의 국정운영방식을 촌철살인(寸鐵殺人)했다. 10년은 더 정권을 쥐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뭐가 그리 급한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법안들을 ‘초읽기식’으로 밀어붙였다. 애당초 상생이니 통합이니를 들먹이지나 말든가….

행정수도법이 사형선고를 받자 행정도시법으로 부활시키는, 헌법의 회색지대를 넘나드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면 이 정권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낙향해서 쉬고 있는 전직 청와대 고위 인사의 말처럼 “니는 캐라(너는 마음대로 떠들어라). 나는 간다”식이 아니었던가.

위헌성, 공정성 시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개정 사립학교법도 마찬가지다. “그런 거 따지다 언제 개혁하나? 위헌 판결나면 그때 가서 보자.” 이런 식이다.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에 사학규제 강화는 당연하다”고 강변하면서 구(舊)사학법에서 금지한 사립교사의 노동운동은 슬그머니 풀어주는 이율배반은 또 뭔가.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신세 갚는 건 인지상정이라 치더라도 이쯤 되면 너무 뻔뻔하지 않나.

입만 열면 개혁과 사회정의(正義)를 내세웠던 대통령의 최측근과 장관들이 올 한 해 줄줄이 비리와 부동산투기 혐의로 낙마했다. 정부 여당이 아무리 개혁과 정의를 소리 높여 부르짖어도 국민이 따를 리 없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온다. 그 결과는 지난 두 번의 재·보선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부랴부랴 국정홍보를 강화한다고 부산을 떨어도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바닥에서 요지부동이다.

당-정-청의 주요 인사들은 대통령 찬가, 태평성대(太平聖代)론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다. 어떤 이는 “나라는 이미 반석 위에 올라 있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교장에, 노무현 대통령을 총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잘하는 대통령이 왜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다고까지 했는지 국민은 헷갈린다.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인 서민들은 이런 말잔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노무현 후보 찬조연설로 유명해진 ‘자갈치 아지매’조차도 한 TV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쓴소리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문제는 경제라예.”

한의학에서는 “머리가 뜨겁고, 발이 차면 건강에 적신호다. 건강하려면 머리를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런 건강한 몸 상태를 주역의 괘로는 ‘수승화강(水乘火降·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이라고 한다. 상화하택과는 정반대로 균형·안정·조화를 가져오는 괘를 뜻한다. 애덤 스미스 이후 최고의 경제학자인 앨프리드 마셜도 ‘경제학판 수승화강’을 설파했다. 모름지기 참된 경제학자는 ‘차가운(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위(머리와 입)가 아래(가슴과 발)에 비해 뜨거운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내년에는 상화하택 대신 수승화강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히기를 기대해 보는 건 아무래도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조전혁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경제학 jhcho@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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