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전문가가 뽑은 차세대 유망연주자 1위 손열음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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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국내파 연주자로서 세계 무대에 도전해 온 피아니스트 손열음. 올해 유학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그를 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충모 교수는 “제아무리 어려운 곡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해 내는 것이 손열음 연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권주훈 기자
순수 국내파 연주자로서 세계 무대에 도전해 온 피아니스트 손열음. 올해 유학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그를 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충모 교수는 “제아무리 어려운 곡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해 내는 것이 손열음 연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권주훈 기자
《“연주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이 담긴다고 하잖아요. 저처럼 자란 피아니스트와 다른 연주자들은 자세부터 뭔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옷은 세탁기가 빨아 주고, 밥은 밥솥이 해 주니 힘든 것은 없어요.” 피아니스트 손열음(20) 씨. 주말이면 가족을 만나러 강원 원주행 버스에 오른다. 고향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한 16세 때부터 그는 홀로 학교 근처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자취 생활을 해 왔다. 주말이면 그는 고향의 교회에서 예배도 보고, 어머니와 경기장을 찾아 원주가 연고지인 프로농구 동부프로미 팀을 응원하기도 한다.》

그는 또래 연주자들이 필수 코스로 거치기 마련인 예술중학교에도 다니지 않았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다. 5세 때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웠고, 12세부터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에게 레슨을 받으며 국제 콩쿠르에 출전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국내 클래식 전문가들은 2005년 말 동아일보가 실시한 ‘프로가 뽑은 프로’에서 이 토종 피아니스트를 단연 차세대 유망 연주자 1위로 선정했다.

● 스스로 찾아가는 피아노 세계

1997년 러시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2000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 콩쿠르 1위,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최연소 1위, 2005년 폴란드 쇼팽 국제콩쿠르 결선 진출…. 손 씨는 이제 피아노 신동을 넘어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들은 매번 그가 해외유학 경험 없이 100% 한국에서만 공부한 연주자라는 점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12세 때부터 모든 해외 콩쿠르를 부모 동행 없이 단독 출전했다는 것. 러시아든 미국 독일 이탈리아든 그는 혼자 비행기 버스 택시를 갈아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콩쿠르 등록부터 숙소 잡는 일까지 혼자서 다했다.

“콩쿠르 때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늘 두려웠고, 또 설레기도 했지요. 콩쿠르 전날 밤이면 피아노를 어떻게 칠까보다는 대회장을 어떻게 찾아갈지 고민하느라 지도를 펴놓고 밤을 새우곤 했어요.”

지난해 10월 쇼팽콩쿠르에 참가했던 기억은 최악이었다. 예선 기간 감기에 걸려 한 달 동안 몸이 아픈 상태에서 대회를 치렀다. 열이 나고 아픈 상황에서도 1, 2차 예선에서 ‘베스트 5’에 들 정도로 호연을 펼쳤다.

혹시 누군가 곁에서 도와줬더라면 좀 더 좋은 연주를 펼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 어릴 적부터 혼자 일을 하는 데 익숙해요. 콩쿠르에 나갔을 때 만약 누가 곁에 있다면 제 스트레스를 전부 다 그 사람에게 풀었을 텐데, 그래선 안 되잖아요.” 그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 2006년은 도전의 해

2006년은 손 씨에게 새로운 도전의 해다. 2월이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연주자로 나선다. 하반기에는 독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물론 이번에도 혼자다.

올해 첫 연주회도 도전적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12∼14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여는 ‘2006 아트 프런티어’ 무대에서 사흘 동안 독일 프랑스 러시아 3국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잇달아 연주하는 것. 모험이지만 이제껏 쌓아 온 음악적 넓이와 깊이, 에너지의 함량을 고스란히 보여 줄 계획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한 번에 여러 곡을 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12일 ‘독일의 날’에는 슈만의 ‘아라베스크 C장조’와 ‘카니발’, 13일 ‘프랑스의 날’에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14일 ‘러시아의 날’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한다.

스스로의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 온 손 씨. 그에겐 ‘분더킨트(신동)’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장의 고통과 방황은 최소한에 그칠 것 같다.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는 정신과 낙천적 미소가 그의 가장 큰 무기이기에.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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