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날 낮에 우연히도 버시바우 대사와 본보 동아일보 논설실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배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인터넷 매체를 비롯한 진보 성향의 뉴 미디어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갖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만나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내심 반대하고 있다는 일부 한국인들이 선입견은 잘못된 일이라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위조달러 제작과 마약 거래와 같은 불법 행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한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3분논평> 버시바우 미 대사를 위한 변명
그는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한 자신의 말에 대해 일부 비판 여론도 있었지만 택시 기사나 음식점 주인, 등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잘 했다고" 하더라며 웃었습니다.
저는 그런 버시바우 대사의 태도에서 '국가 간의 관계는 언제나 양면적, 다면적 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누구나 좋은 점이 있고, 싫은 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버시바우 대사의 북한관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만나서 대화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복시키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민조노총 조합원들은 좋은 기회를 한 차례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주한 미국대사들의 태도는 근래에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한국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 대중의 소리, 보통사람들의 소리,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임자였던 크리스토퍼 힐, 토머스 하버드 대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웬만한 대학 동창회치고 미국 대사 불러 조찬 모임을 갖지 않은 대학이 없을 정도입니다. 옛날 같으면 불러도 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부르면 옵니다. 버시바우 대사 자신도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화는 좋은 것입니다. 미국도 이럴진대 우리가 대화를 회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과 생각이 다를수록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민주노총 지도부와 버시바우 대사가 본격적으로 한 번 만났으면 합니다. 앙금을 씻어버리고 만나십시오. 만나서 바람직한 한미관계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주십시오. 그러한 토론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한미동맹의 미래를 고민하는 양국의 모든 지식인과 관리들, 정치인들에 정말 좋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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