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양극화 해소, 대책 없는 구호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신년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로 양극화(兩極化)를 꼽고, 일자리 창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일자리야말로 국민이 대통령 이상으로 목말라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천과 성과다.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동반 성장’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했지만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이 정권은 임기 전반을 과거사 파헤치기와 편 가르기용 국정과제에 매달려 허비하다가 뒤늦게 양극화를 들고 나왔지만 아직도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노 대통령부터 작년 8월 국민과의 TV 대화에서 “양극화가 심각하긴 하나 세계적 현상으로 봐야 하며, 우리가 세계 최악은 아니다”고 했다. 양극화가 5월 지방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이슈화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소수 기득권세력과 다수 낙후세력으로 나눠서 선거를 치르기 위한 ‘구호’라는 것이다.

이 정권은 지난 3년간 양극화를 더 키워 왔다. ‘부동산 부자에게 초정밀 세금폭탄을 날린다’는 ‘8·31 부동산 종합대책’은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킴으로써 중산층과 서민층은 제때 이사도 못 가는 후유증을 낳았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분 아래 추진되는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정책은 전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어 땅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자산 격차를 더 벌려 놓았다. 대통령은 이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했어야 했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이 첫째다. 민간부문에서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나친 정부 규제와 고용경직성’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방한했던 그레고리 차우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도 “한국이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기업가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미래 대책을 위해선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서 “재정 효율성을 높이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세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면서 “재정의 절반 이상을 복지에 쓰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는 4분의 1밖에 쓰지 않으면서도 심지어 ‘좌파정부’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혈세로 만드는 사회적 일자리’보다는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만드는 민간 일자리’가 더 근본적인 양극화 해소책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새해 잠재 수준의 성장이 이뤄질 경우 양극화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했지만 올해 5% 이상의 성장과 37만여 개의 새 일자리라는 정부 목표 이상으로 실적을 올려야 양극화 완화를 체감할 수 있다. 그 동력(動力)은 민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무슨 문제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풀겠다는 ‘끌어안기식’ 발상에 대해선 이미 정부 안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높다. 재정경제부는 “복지 등의 지출이 크게 증가할 경우 재정건전성이 중장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 복지예산만 해도 국회에서 증액돼 작년에 비해 13.4%나 증가한 56조 원에 이른다.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와 미래 대비를 위해 각계의 ‘책임 있는 사고와 행동’을 요구했다. 경제가 어려웠던 것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위기론’과 ‘파탄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탄핵 사태와 대연정 제안 등으로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간 대통령의 리더십 또한 책임 있는 리더십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리더십일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잘했는데 주위에서 발목을 잡았다’는 식의 국정 인식으로는 양극화는 물론 국가의 미래 대비를 위한 설계도 불가능하다.

신년연설에서 이 대목에 대한 대통령의 달라진 인식과 태도를 기대했던 국민이 다시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도 말했지만 국민의 수준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독선과 아집의 ‘노무현이즘’으로 더는 국민을 설득할 수도, 끌고 갈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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