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인환]우리 동네 도둑고양이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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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요즘 동네에 도둑고양이가 부쩍 늘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녀석들이 기껏해야 60가구 정도 되는 시골마을을 마구 헤집고 다니다 보니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단골손님’이 됐다(도회지 생활을 접고 18년째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데, 경기 양평군 양수리 생활을 거쳐 지금 사는 곳은 쌀로 유명한 이천시의 한 시골이다).

버림을 받았는지 스스로 가출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뎃잠을 자느라 꾀죄죄해진 놈들이 동네를 배회하다가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휙 하니 암팡진 기운만 남겨 놓고 사라지곤 한다. 도둑고양이가 출몰하면 개들이 죽겠다고 짖게 마련인데, 고양이들은 묶여 있는 개 정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근방을 얼씬거리며 놀려 먹기까지 한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당장 뛰어나올 형편이 못 된다 싶으면 전혀 겁을 내지 않는다.

집사람은 마당에 도둑고양이가 얼씬거리면 ‘이놈 고양이!’ 하면서 으름장을 놓지만, 고양이는 시큰둥하게 한번 쳐다만 보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약이 오른 집사람이 댓돌로 나서며 신발짝이라도 치켜들면 그제야 마지못한 척 두어 발짝 피해 주는 시늉을 한다. 집사람 대신 내가 나서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무슨 일이야?’ 하고 고개를 내밀면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쳐 버리는데, 심심찮게 돌팔매질을 하거나 삽 같은 걸 치켜들고 추격전을 벌이곤 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마당은 감히 도둑고양이가 배회할 생각을 못하던 구역이었다. ‘희동이’라는 보기 드물게 한 성질 하는 진돗개 잡종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고양이 몇 마리를 사체로 만든 희동이가 뜻밖의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한 후로는 의리상 다른 개를 들이지 않고 있는데, 희동이 냄새가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도둑고양이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희동이가 있을 때는 먹다 남은 음식을 꼬박꼬박 개밥그릇에 채워 주던 집사람이 그 후로는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두었다가 봄이면 상추를 심어 먹는 뒷마당에 버렸다.

이번 겨울 들어 첫눈이 온 다음 날 무심코 마당을 내다보다가 도둑고양이들이 유난히 비쩍 마른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겨울이 되니 저놈들도 먹이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사람에게 이왕 버리는 거 고양이들이나 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집사람은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놈들에게 뭣 하러 그런 수고를 하겠느냐’면서도 개밥그릇에 남은 음식을 채워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처음 며칠은 ‘이거 우리 주는 거 맞아요?’ 하는 듯 조심스럽게 주변을 맴돌던 놈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때가 지났는데도 집사람이 게으름을 부리면 야옹거리며 독촉까지 해 댔다. 며칠 전에는 낯선 놈들 서넛까지 합세하여 대여섯 마리가 밥그릇 주변에 진을 치고 집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 사람 착하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다. 이에 더하여, 전에는 내가 마당에 나서면 십리 밖으로 내빼던 놈들이 이제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쭈’ 하며 다가가도 피하기는커녕 등을 곧추세우고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하기까지 한다. 사람 손이 엄청 그리웠던 모양이다. 친해진다고 나쁠 거야 없겠지만, 이러다가 동네 도둑고양이 다 먹여 살려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인환 소설가·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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