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길잡이 20선]<6>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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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가 제대로 없던 1960, 70년대의 사정과는 달리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공해 속에서 바르지 않은 읽을거리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아이들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읽을거리를 상혼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아주 엄격하고 단호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3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무엇인가 자꾸 입에 넣어주려 한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너무 먹는다고 야단친다. 먹을 것이 모자라 한이 맺힌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넘치는 음식에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마음의 양식도 마찬가지다. 책이 귀해서 친척이나 친구 집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일이 흔했던 시절에는 닥치는 대로 읽는 이른바 난독(亂讀)의 경험은 은근한 자랑거리였다. 그것은 배고픔이 일상이던 사람이 어느 날 배 터지게 먹어 보았다는 말과 같았다. 영혼의 그릇이 크다 보면 왕성한 식욕에 시달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 욕망을 채우다 보면 어떤 선을 넘는 아련한 쾌락을 맛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른의 경우라면 요즘도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아무 책이나 읽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시절, 책이 많아서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환기시켜 유명해진 책이다. 이 책을 쓸 때 저자는 아직 아동문학 평론가도, 아동출판 전문가도 아니었다. 다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막연한 신앙에 따라 아이를 키우던 억척스러운 엄마였다. 이 엄마는 아이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버릇을 심어 주고자 발품을 팔아 책을 골랐다. 아이에게는 직접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달라진 독서환경을 감지했고 많은 책이 ‘구멍가게에서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형형색색의 노리개 같은 사탕이나 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량도서는 불량식품보다 더 해로울 수 있지 않은가. 이런 확신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태만과 무지에 대한 노여움으로,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질박하면서도 예리함을 잃지 않는 글들이 엮여 나왔다.

이 책의 질박함은 내용에서 온다. 아이의 책에 관심을 두면서 엄마로서 몸소 겪었던 경험들이 여기 실린 작은 이야기들의 출발점이다. 이 책의 예리함은 오랜 인문학적 훈련을 거친 저자의 분별력과 글쓰기 능력에서 온다. 짧고 쉬운 글들이 모여 있지만 어린이 책의 창작, 번역, 제작, 유통, 독서 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건드리면서 부모로서 아이의 책을 고르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깊이는 동심에 대한 존중에서 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시여, 이것을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에게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율법주의자들의 트집을 꾸짖으며 예수가 올리는 기도인데, 우리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편견들 사이로 난 길을 어렵게 따라가도 어른들로서는 가닿기 어려운 진실을 아이들이 의외로 수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이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몇 번씩 경험한다.” 동화책은 어른의 고정관념을 주입하는 교육서가 아니라 아이의 시심(詩心)을 자극하는 상상의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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