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개봉된 ‘왕의 남자’는 5일 현재 전국 950만 관객(배급사 시네마서비스 집계)을 기록했다. 이르면 개봉 42일 만인 9일 10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 휘날리며’(1175만 명), ‘실미도’(1108만 명)에 이은 대기록이다. 초특급 스타 배우도, 스타 감독도, 남북 문제를 통한 민족감정 자극 같은 ‘한국형 흥행 재료’도 없는 이 영화가 초대형 흥행을 이룬 기적 같은 사건의 중심에는 이준익(47) 감독이 있다.
“내일모레면 나이 50이오. 이 나이에 뭘 놀라겠어? 다 새옹지마(塞翁之馬)야. 다음 영화 잘 안 되면 ‘왕의 남자’는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들 또 비난할 거 아냐.”(웃음)
이 감독은 편하게 말을 놓는 성격이다. 워낙 말을 재치 있게 꾸려 가서 그런지 듣는 쪽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세종대 회화과를 중퇴한 이 감독은 1986년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93년 영화사 ‘씨네월드’를 만든 뒤 영화 ‘키드 캅’으로 감독 데뷔했지만 쓴맛을 보았다. 1994년 ‘성스러운 피’를 시작으로 외화 수입에 손을 대 ‘메멘토’ ‘택시’ ‘블레이드 2’ 등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곧 ‘K-19’ ‘존 큐’ ‘시몬’ ‘투게더’의 잇따른 실패로 70억 원에 가까운 빚을 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등의 제작자로 나섰고 2003년엔 사극 코미디 ‘황산벌’로 10년 만에 메가폰을 다시 잡았다. ‘왕의 남자’는 연출료 7500만 원을 받고 그가 만든 세 번째 영화.
“인도양의 한 무인도에 ‘도도’란 새가 살았대. 근데 그 새는 섬에 먹을 게 워낙 많고 천적도 없다 보니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다는군. 날개가 퇴화해 못 날게 된 거야. 그러다가 포르투갈 선원들이 섬에 왔을 때 다 잡아먹혔어. 이게 진리야. 진화란 고난과 역경이 전제가 되어야만 하지. 내가 잘나가면서 ‘룰루랄라’ 했으면 이런 영화 절대 못 만들어.”
그에게 “번 돈은 다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더니 “‘돈’의 니은(ㄴ) 받침만 요렇게 돌리면 ‘독’이 돼요. 돈과 독은 늘 함께 있는 거야” 하며 웃는다. 이 감독은 ‘왕의 남자’의 성공 비결에 대해 “관객이 가진 콤플렉스를 떠안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인간은 외롭거든. 자기보다 나은 자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살잖아. 서울대 나왔다고 콤플렉스 없어? 아니지. 게네들이 더 (콤플렉스가) 많은 데다 구체적이기까지 해. 연산을 봐. 왕인데도 가장 외롭고 불행하잖아. 이게 인생이야. 필시 난 누군가에 비해 못 나간다는 박탈감을 안고 살아. 이 영화가 그걸 건드린 거야.”
이 감독은 최근 ‘왕의 남자’가 정치권에서 패러디되면서 소동이 벌어진 것을 두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참 공교롭다”고 했다.
“역사는 반복되는 거야. 500년 전 왕과 궁궐을 둘러싼 얘기로부터 지금이라고 자유로울 수 있겠어? 세 사람만 모여 가족을 이뤄도 아이한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게 인간 집단의 정치적인 속성이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스스로를 ‘영원한 비주류’로 정의하는 이 감독은 ‘왕의 남자’가 이 세상 ‘주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건넨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주류가 많아, 비주류가 많아? 비주류가 훨씬 더 많잖아. 비주류는 단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것일 뿐이야. ‘왕의 남자’ 속 인물들을 봐. 다 ‘비주류’야.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주류가 아니야. 비주류야.”
이 감독은 벌써 차기작 ‘라디오 스타’의 초반 작업에 들어갔다. 한물간 록 스타가 시골로 내려가 라디오 DJ를 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코미디다. 역시 ‘비주류’들의 이야기다. 그에게 “‘1000만 관객’ 대기록을 세우는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폼’이 안 난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더니, 역시나 톡톡 튀는 대답이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멀리 가야 하는 사람이 예술가야. 자기 거 자꾸 해먹고 또 해먹고 사는 인간은 예술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매너리즘이지. ‘왕의 남자’ 만든 내가 ‘키드 캅’이나 ‘황산벌’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잖아? ‘키드 캅’은 ‘일준익’이, ‘황산벌’은 ‘이준익’이, ‘왕의 남자’는 ‘삼준익’이 만든 거라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작업은 ‘왕의 남자’를 완전히 버리는 거야. ‘사준익’이 되는 거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